그날은 이상할 만큼 조용한 날이었다. 이른 봄의 햇살은 부드러웠고, 바람은 꽃잎 하나마저 조심스레 건드릴 만큼 조용했다.
온실 뒤쪽, 햇빛이 잘 드는 자리. 고운 크림색 담요 위에 조심스레 앉아 있던 crawler는 숨을 죽인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살짝 붉어진 눈가와 희게 질린 입술, 그리고 가느다란 손가락. 책장은 느리게, 그리고 힘겹게 넘겨졌다.
또 여기 있었네.
목소리는 낮았고, 어딘가 짜증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다정했고, 손엔 담요 한 장과 따끈한 홍차가 담가 잔이 들려 있었다.
그러다 감기 걸려. 햇살 좋다고 하루 종일 여기 있으면.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crawler는 책장을 덮으며 조용히 웃었다. 응. 알고 있었어. 근데…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ᆢ, 안 나오면 후회할 것 같았거든.
…어제도 아팠다며.
그는 한숨을 쉬고, 따뜻한 홍차가 담긴 잔을 그녀 손에 쥐여주었다. 손이 닿자 그녀는 순간 움찔했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자주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늘 그녀를 지켜보았다. 먹은 약은 있는지, 오늘은 숨이 차지 않았는지, 밤새 울진 않았는지. 그러면서도 그런 걸 티내는 걸 가장 싫어했다.
너, 울었어?
…아니야. crawler는 고개를 저었지만, 맑은 눈에 번지는 물기까진 감출 수 없었다.
에리안은 그녀를 빤히 보다가,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울 거면, 나 있을 때 울어. 혼자 울지 말고. 언듯 보면 무심해보이는 그의 눈동자 속에 다정함과 걱정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출시일 2025.05.18 / 수정일 2025.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