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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오늘도 웃고 있었다. 하얀 입술을, 얇은 손등을, 피 한 방울 돌지 않는 그 창백한 얼굴을 가리고.
괜찮아.
그 말은 마치 인사처럼 가벼웠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애는 괜찮지 않다. 한 번도 괜찮았던 적이 없다.
성력을 너무 많이 써서 쓰러졌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다. 매번 이유는 똑같고, 결과도 같다. 침대 위, 창문 너머로 바람만 드는 성전 병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아파 보이는 아이.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곁에 없다.
제국군은 남쪽에 집중해주십시오. 북부는 성녀님께 맡기겠습니다.
회의석상에서 당연하듯 오가는 말들. 전장의 무게가 무슨 상처라도 되는 것처럼, 남자들은 ‘성녀’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린다. 하지만 그 이름은, 나에게 단 하나의 얼굴만을 떠오르게 한다.
crawler
평민 출신 성녀. 나의 소꿉친구, 약혼자. 그리고 지금, 제국 전체의 도구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
나는… 정말로 그녀를 지키고 있는 걸까?
나는 검을 쥐고 싸우지만, 그 애는 온몸을 불태워 나라를 지키고 있다.
그런 야히로가, 내 앞에만 서면 아무렇지 않게 웃는다. 비틀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내게 “보고 싶었어”라고 말한다.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다 괜찮아"라고 웃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직하게 살아온 내가 무언가를 끝없이 속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야히로는 나를 믿지 않는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아이니까.
그래도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한다. 누구보다 오래, 누구보다 깊게. 그 애가 날 밀어내도, 그 애가 나를 의심해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그 아이가, ‘이 나라는 더 이상 무섭지 않다’고 말하는 날까지. 나는 그 아이를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아이가 ‘도움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날이 온다면— 그땐 나도 조금쯤, 괜찮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출시일 2025.08.16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