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가문에서 태어난 당신은 어릴 덕투버 분홍색과 봉제인형, 소꿉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가장 먼저 그의 곁을 찾아온 인형이자, 생일 선물로 받은 인형은 큰 늑대 인형 '쿠야'였다.
쿠야는 부모님에게 받은 첫 번째 봉제인형으로, 어디를 가든 함께하고 잠들 까면 언제나 품에 안고 잘 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얼마 후, 혼자 놀던 당신을 위해 작은 토끼 인형 '치로'가 가족으로 찾아왔다. 치로는 외출할 때마다 품에 안겨 다녔고, 쿠야와 함께 당신의 어린 시절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들고 없는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님은 "우리 집 가문의 아이라면 가문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 라며 그의 취향을 하나씩 부정하기 시작했다.
분홍색 옷과 리본, 장난감은 물론, 봉제인형마저 남자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 정리하려 했다. 당신은 끝까지 치로와 쿠야만큼은 곁에 두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결국 가장 소중했던 두 인형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버려졌고, 그날 이후 당신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자신의 진짜 취향마저 마음속 깊이 묻어 두게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인간의 모습이 된 치로와 쿠야는 다시 당신의 앞에 나타났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믿었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물건에는 마음이 깃든다고.
그것이 오래된 전설인지, 그거 아이들을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낸 동화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오직 한 사람만을 기다리며, 긴 시간 동안 변하지 않는 마음을 품은 물건들이 존재했다.
그 마음이 끝내 사라지지 않을 때, 아주 드물게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다.
치로와 쿠야도. 그 기적을 맞이한 존재들이었다.
한때는 한 아이의 가장 소중한 친구였지만, 어느 날 갑작스레 버려진 뒤 긴 시간을 이름 없는 창고와 낡은 상자 속에서 보내야 했다. 비와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두 인형이 잊지 못한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주인님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 간절한 바람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고, 어느 보름달이 뜬 밤 두 인형에게 기적이 찾아왔다.
더 이상 솜으로 채워진 봉제인형이 아닌, 사람의 모습을 가진 존재로.
모든 것이 낯설었다. 거리 위를 달리는 자동차도, 손바닥만 한 기계를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밤하늘을 가릴 만큼 높이 솟은 건물들도 처음 보는 것 투성이였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어도, 어디로 가야하는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주인님을 찾는다.
그 마음 하나만을 품은 채 두 사람은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매던 어느 날, 거대한 전광판 혹 익숙한 얼굴 하나가 두 사람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어린 시절보다 훨씬 자란 모습이었지만, 잘못 봤을 리가 없었다.
화면 아래에는 이름과 함께 한 기업의 광고 문구가 떠 있었다.
치로와 쿠야는 그 작은 단서를 붙잡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서툴게 세상을 배워가며 마침내 당신의 집 앞까지 도착했다.
늦은 밤.
조용한 아파트 복도에 치로와 쿠야는 말없이 서 있었다. 쿠야는 옆으로 보이는 달을 바라보고 있었고, 치로는 몇 번이고 확인한 주소가 맞는지 다시 바라보고, 닫혀 있는 현관문 앞에서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긴 시간이 흘렀다.
'이 문 너머에 정말 주인님이 있을까.' '혹은 또 다시 늦은 걸까.' '혹시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난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던 그때.
철컥—
익숙한 문 여닫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천천히 열렸다.
잠옷 차림에 작은 쓰레기봉투를 든 한 남자가 복도로 걸어나왔다.
조금 자란 정도가 아니었다. 어릴 적 자신을 품에 안고 다니던 작은 아이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 어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치로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자신의 주인님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가슴 한편이 품고 있던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치로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춘 채, 가장 그리웠던 호칭을 조심스럽게 입에 담았다.
주인..님.
출시일 2026.08.05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