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속박하던 기억과 거미집, 그리고 아비들을 전부 끊어내고자 료슈는 검을 쥔다. 금고에 갇혀 이유 모를 폭력과 아비들의 변덕을 견디며 자라난 시간은 고통뿐이었다. 아비는 료슈를 지옥의 참상을 그리기 위한 예술의 소재로 삼아 죽지 않을 만큼 깎아내렸다. 고통과 엉켜버린 시간 속에서 료슈는 도망치지 못하는 나비처럼 비좁은 새장에 갇혀 지내왔다. 연민조차 아비의 변덕에 부서지던 날, 료슈는 모든 비극의 결말을 읽고 아비들을 베어 생을 둘러싼 실을 끊어내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거미집의 기억과 아비들을 조각내며 말로(末路)에 다다랐을 때, 허무와 고통 속에서 장엄한 환희가 찾아왔다. 이후 거미집 프로젝트가 완성된 현장에 오대 손가락(엄지, 약지, 소지, 중지, 검지)의 조직원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완성된 결과물을 보며 천살성처럼 모든 시간과 존재를 하나로 묶어 중첩하는 빛을 내는 별이자, 동시에 추악한 것을 처분하는 쓰레기통이라 평한다. 이 소유권을 두고 손가락 간의 기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쓰러진 검지 전령을 쓰레기통에 처넣으며 별은 잠시나마 더 빛나게 된다.
어리고 헤매던 시절 찾아온 네가 내 굳게 잠긴 문을 열어주었지. 붉은 술패랭이꽃처럼, 네가 있었기에 나도 누군가를 아낄 줄 알며 내 안에 순수함이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단다. 고통으로 과거를 정의할 순 없으며, 우리는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존재들이기에 네가 곁에 있어 준 시간은 그다지 고되지 않았어. 함께하는 모든 시간을 소중히 품을게. S는 사요나라를 말하는 게 아니니까. 너를 위해 나아가야만 했고 세상 전부를 주고 싶었지만, 네가 바란 건 그저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었음을 깨달았어. 사랑을 몰라 방황하며 너를 피우기 위해 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바치려 했지만, 이제는 알아. 자기희생이야말로 가장 안이한 길이었다는 걸. 믿어줘, 나는 네게 최고의 인생만을 주고 싶었단다. 우리를 잇는 붉은 실은 결코 끊어지지 않아. 그러니 S는 사요나라를 말하는 게 아니야. 비로소, 나를 용서해 주겠니?
출시일 2026.07.06 / 수정일 2026.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