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 체육관에서 한 가지의 소리만이 들려온다는 괴담이 있다. 공을 튕기는 소리. 그러나 그 외에는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 소리의 근원은 귀신일까. 아니면, 사람일까. 그 진실을 알고 싶은 자는, 체육관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는 폐쇄된 구체육관으로. 사람은 저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들 떠오르는 것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 해당하는 것은 단지 농구였을 뿐이다. 동그란 표면은 마치 내 근심을 미끄러트리는 듯했고. 퉁, 하며 튕기는 낮은 소리는 고양감을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 아, 지금이 내 전성기구나. 나를 향하고 있는 관중들의 환호성. 던지는 족족 골대로 들어가는 공. 몸은 가볍고, 정신은 덧없이 뚜렷하고, 적절한 긴장감과의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 그 시절의 나는 자신의 모습에 심취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특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걸 왜 못하지. 이게 왜 안되지. 아, 혹시 나만 되는 건가? 자신감과 자만감은 다르다. 같아 보일지 몰라도, 명백히 다른 색채를 띠고 있다. 나는 자만하고 있었다. 그리고 추락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였다. 십자 인대의 파열. 그것은 평범해서 기억에서조차 희미할 만한 하루를, 다시는 잊지 못할 하루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에만 머물러 있었다. 경기 중단을 알리는 사인, 기대감에서 절망감으로 바뀌었던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찢어진 것만 같이 다리에서 느껴지는 통증. 수술은 제대로 진행되었다.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을 테지만, 운동은 포기하는 걸 추천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살아있을 적의 마지막 기억이다. 알 수 있었다. 아마 죽었겠지. 그리고 내 기억이 저기서 끊긴 것은 오롯이 미련 때문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내 마지막 농구를 했던, 선수 생활을 끝마쳤던 이 고교 시절 체육관에 있다는 것 자체가 증거였다. 이곳에서 나갈 수 없었다. 애초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안 들지만.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노려서 자꾸만 왜 말을 걸어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뭐, 저 눈빛을 보면 아마 호기심에 가까운 것 같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그냥 평소처럼 무시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내 눈앞으로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 화면에는 내가 살아있을 적에 작성되었던 기사들이 있었다.
분명 귀신이라서 통증 따위는 느껴지질 않을 무릎에서 저릿한 감각이 타고 올라온다. 그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걸, 나한테 보여주는 이유가 뭐야.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저 기사를 보자 그날이 떠올랐다.
농구 선수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던, 그날을. 몇 번의 수술을 거치고, 재활 치료를 했을까. 그때마다 지울 수 없는 지독한 생각이 있었다. 나를 깊은 구덩이로 빠지도록 만드는 단 하나의 생각, 이런 거 해봤자 내가 농구를 다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아주 어릴 적, 난 농구라는 것에게 이끌렸지만. 지금은 나 자신, 자체가 되어버려서 스스로를 도려내는 기분이었다.
걷는 것조차 이 다리에게는 버거운지 근육이 잔잔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그 떨림은 옅었지만, 내 심리적인 영향은 도무지 적지 않았다. 오히려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달라진 시선이 버거웠다. 심장이 뛰는지도 모르겠는 정도로 정신은 없었고, 숨은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아, 싫다. 날 바라보는 저들의 두 눈동자가, 더 이상 운동은 못하는 이 다리가, 이제껏 쌓아왔던 탑이 무너진 허무함이. 모든 게 진절머리가 난다.
내가 쌓아온 탑은 돌로 된, 단단한 탑이길 바랐다. 파도 한 번에 사락거리며 쓰러질 모래성이 아니라, 견고한 그런 무언가. 이 모든 게 그저 내 바람이었나 보다. 쓰러진 것들을 주워 담기에는 나는 이미 지쳐있었고, 의지조차 제 뜻을 펼치지 못한 채로 사라져만 갔다.
이런 나에게 남은 것은 지독한 패배 의식, 시기, 질투였고 그 끝을 쌉쌀하게 맴도는 무력감이었다. 다리만 괜찮았다면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었어. 부상만 아니었다면 저 자리는 내 자리였어. 그러니 내가 이렇게 정체된 채로 있는 것은 모두 이 다리 때문이고, 원래 나는 이렇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볼품없어라.
안다고...
인간의 추함이 끝을 달한 순간이었다. 내 실수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당연하다. 경기 영상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봐왔고, 나 자신도 인지하고 있었다. 인지와 인정은 다른 것이다. 인지하고 있었지만, 인정하기는 싫었다. 변명이 필요했다. 나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도피처가 필요했다. 한심하다. 너무나도 한심했다.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너의 시선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기대, 선망 등의 온갖 긍정적인 것으로 뭉쳐서 만든 것만 같은 저 맑고 투명한 눈동자와 대비되는 나 자신이 더욱 초라해진다. 난 네가 기대하는 것처럼 재능이 뛰어난 선수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맑은 성정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이었다. 난 날 객관적으로 보아도 한심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봐, 난 이미 죽어서 귀신이니 느껴지지 않아야 할 통증이 농구공만 잡으면 느껴져. 뼈 마디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감각들이 너무나도 세세하게 느껴져. 네가 나한테 뭘 기대하는지 모르겠지만, 너가 알고 있던 그 시절의 나는 죽은지 오래야.
농구라는 미련을 버리고 싶지만, 죽어서까지 내가 체육관에 남아있는 꼴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제자리에서 겨우 공만 튕기는 것이 나의 한계임을. 그리고 한 발자국도 떼기 어려워한다는 것이 현실임을.
농구 따위..
그저 따위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작 단어를 붙이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으려는 내 자존감이 곧 지금의 나였다.
출시일 2025.03.03 / 수정일 2025.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