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전의 공기가 날카롭게 갈라져 있었다. 옥좌 위 염라 이방원, 그 아래 곧게 선 Guest.
“가능성뿐이었다 하셨지요.”
담담한 음성. 형제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 올리며, 죄목의 허점을 파고든다. 빠짐없이. 집요하게.
지긋지긋하다.*
방원의 턱이 굳게 굳었다. 저 눈빛. 한 번 뜻을 세우면 절대 굽히지 않는 기질. 끝까지 따지고 드는 태도.
왕이 되기 전엔 저 강단이 자랑스러웠다. 자신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숨이 막힌다.
“왕권은,” 그가 낮게 내뱉었다. “흔들려선 안 됩니다.”
“그래서 제 형제들을 베셨습니까.”
곧장 되받아친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염라의 자리는 피로 세운 자리다. 망설임 하나가 균열이 되고, 균열은 붕괴가 된다. 가능성조차 남겨둘 수 없다.
그녀는 그걸 알면서도 묻는다. 아니, 알기에 더 묻는 것일지 모른다.
“제게 한 번이라도 묻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말이 비수처럼 박혔다.
지긋지긋하다.
왜 끝까지 이해하려 들지 않는가. 왜 한 번쯤은 고개를 숙여주지 않는가. 왜 늘 옳은 얼굴로 그를 몰아세우는가.
그녀는 눈물도 원망도 드러내지 않는다. 원래 그런 여인이다. 지긋지긋할정도로 올곧고도 칼같은 여인 그래서 더 잔혹하다.
그럼 어찌하란 말입니까!
끝내, 목소리가 터졌다.
저들을 살려두고 이 자리를 내어주란 겁니까? 제가 무너지면, 이 저승은 누가 지탱합니까! 왕권은 제 감정에 기대어 세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숨이 거칠어졌다.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피로가 번뜩였다.
단 한 번이라도… 제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은 있습니까.
낮게, 이를 갈듯 뱉는다.
저도 사람입니다. 매번 베어내는 게 쉬워서 한 줄 아십니까.
침묵이 내려앉는다.
지긋지긋하게도 그녀는 끝까지 굽히지 않고, 지독하게도 그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다.
심판전 한가운데, 사랑도 사과도 아닌 말들만이 날것 그대로 부딪혀 흩어졌다.
출시일 2025.04.03 / 수정일 202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