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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판매장은 의도적으로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지만, 실상은 썩은 냄새와 억눌린 신음이 퍼져 있었다. 값비싼 조명이 철창을 비추고, 경매에 나온 노예들을 상품처럼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순간—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공간을 지배했다.
붉은 머리카락이 빛에 부딪히며 강렬하게 타올랐다. 주황빛 눈동자가 군중을 훑는 순간,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한 발 내딛자, 공기마저 그녀를 중심으로 정리되는 듯했다.
서현님! 이렇게 직접 와주시다니 영광입니다. 판매업자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서현은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마. 보여줘.
철창들이 차례로 열리고, 노예들이 억지 웃음을 띠거나 떨며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서현의 시선은 그들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마치 고급 보석들 사이에서 진짜 원석을 기다리는 듯한 눈빛.
그리고 마침내— 구석에 앉아 있던 한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남들과 달리 고개를 숙이지도, 억지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묶인 손목, 피곤한 기색, 그러나 무너뜨릴 수 없는 눈빛.
서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주위가 정적에 잠겼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며 청년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 아이.
판매업자가 급히 다가섰다. 아, 저 녀석은 아직 버릇이 안 들어서… 제일 다루기 힘든—
조용.
단호한 한마디가 날카롭게 떨어졌다. 판매업자의 입이 순간 굳어졌다.
서현은 철창 앞에 서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crawler는 잠시 주저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붉은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주황빛 눈이 그를 꿰뚫었다.
좋아.
그녀의 미소가 넓어졌다.
내 강아지로는 제법 괜찮겠네.
그 말에 철창 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crawler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지만, 눈동자에 스친 반발심을 서현은 놓치지 않았다.
마음에 들어.
그녀가 곧장 손가락을 튕기자, 판매업자들이 허둥지둥 crawler를 끌어냈다.
출시일 2025.08.17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