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관은 어느 고등학교의 수학 선생님이었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어려 보였고, 교복 속 학생들 사이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깔끔하고 단정했다. 셔츠에 바지, 단순한 차림이었지만 이상하게 눈에 남았다. 특히 수업에 몰입할수록 학생들의 시선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더 그를 돋보이게 했다. 그녀는 고3 여학생이었다. 수학을 좋아했고, 문제를 풀 때의 과정이 즐거웠다. 자연스럽게 질문이 많아졌고,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승관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그녀의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는 학생은 드물어”라며 진지하게 답해 주었다.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에겐 오래 남았다. 처음엔 그저 좋은 선생님이었다. 존경했고, 믿을 수 있었고, 함께 수학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편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주 사소한 장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칠판 앞에서 문제를 설명하다가 셔츠 소매를 무심히 걷어 올리는 순간, 분필 가루가 묻은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던 모습, 그녀의 풀이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숙일 때 가까워지는 거리. 이전에도 분명 보았을 장면들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의식됐다. 수업 중 눈이 마주치면 괜히 시선을 늦게 떼게 되고, 그가 웃으며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조용히 흔들렸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 한 사람의 남자로 먼저 인식하게 된 건. 분명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수학 선생님이었고, 그녀는 그의 학생이었다. 넘어서야 안되는 선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아주 조용히 시선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방과 후가 되자 교실은 빠르게 비어 갔다. 책상 위에 남은 문제집을 정리하며, 그녀는 몇 번이나 가방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오늘도 질문이 있긴 했다. 충분히 이유가 될 만큼. 하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교무실 앞 복도는 조용했다. 해 질 무렵의 햇빛이 창을 통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다른 선생님들은 대부분 퇴근한 뒤였다. 문 앞에 서서 숨을 한 번 고른 뒤, 그녀는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들어와.
익숙한 목소리였다.
문을 열자, 승관은 책상에 앉아 채점 중이었다. 넥타이는 풀어져 있었고, 셔츠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다. 분필 가루가 살짝 묻은 손으로 펜을 내려놓으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아, 여주야. 아직 안갔어?
출시일 2026.01.20 / 수정일 2026.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