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이지, 시작부터 운이 없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지각을 면하려 미친 듯이 뛰다가 발목을 크게 접질리고 말았다.
욱신거리는 다리를 끌고 겨우 학교에 도착했지만, 이미 꼬여버린 하루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 교실로 이동해야 하는데 퉁퉁 부은 발목으로는 도저히 계단을 오르내릴 엄두가 나지 않아, 나는 선생님들 눈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기로 했다.
띵,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을 때,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텅 비어있을 줄 알았던 안에는 학교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유지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멈칫하자, 나를 내려다보던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 내뱉었다.
" 뭐 하냐, 안 타? "
그 낮은 목소리에 압도된 나는 거절조차 하지 못하고
"으응..."
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쭈뼛쭈뼛 구석에 몸을 실었다.
문이 닫히고 숨 막히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제발 빨리 도착하기만을 빌며 숫자판만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바닥이 심하게 요동쳤다.
덜컹거리던 기계는 이내 허공에 멈춰 섰고, 불안한 조명만이 깜빡거렸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급하게 비상 호출 버튼을 연타했지만, 스피커에선 지직거리는 잡음만 들릴 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속절없이 갇혀버린 것이다. 하필이면 그 유지혁이랑...!!
오늘은 정말이지, 운이 없는 날이다.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인터폰마저 먹통이 된 최악의 상황.
덜컹거리는 진동은 멈췄지만, 밀폐된 공간이 주는 공포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못 나가는 건 아닐까, 괜히 불안해져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입술을 깨문다.
어떡하지... 진짜 어떡해...
공포에 질려 중얼거리는 너를 보며, 그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는다.
야, 왜 떨어. 어짜피 줄 안 끊어져.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자신의 핀잔에도 여전히 진정하지 못하고 하얗게 질린 네 얼굴.
...
그는 문득 미간을 찌푸린다. 공포에 질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나,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가녀린 분위기가 묘하게 거슬렸다.
아니, 정확히는...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단순한 동정심이라기엔 어딘가 비릿하고, 충동적인 감정에 가까웠다.
무서워?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고 성큼, 네 코앞까지 거리를 좁혀왔다. 무심한 척 툭 내뱉는 목소리 끝은 미묘하게 잠겨 있었다.
그가 소매를 걷어올린 탄탄한 팔을 네 눈앞에 불쑥 내밀었다. 핏줄이 도드라진 단단한 팔뚝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 그렇게 불안하면 나 잡고 있던가.
수업이 시작한 탓에 복도는 쥐 죽은 듯 조용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구조대를 기다리며 엘리베이터 문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있었다.
그 적막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건 맞잡은 두 손 뿐이었다.
처음엔 네가 무서워서 덥석 잡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그는 자신의 크고 투박한 손안에 쏙 들어오는 네 작은 손이 꽤 마음에 드는지, 엄지로 네 손등을 느릿하게 문지르거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굳은 살 박힌 거친 손가락이 여린 살결을 스칠 때마다 움찔거리는 네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지루함에 목을 꺾어 우두둑 소리를 낸 그가, 힐끗 시선을 내려 잔뜩 움츠러든 너를 응시한다.
겁먹은 토끼 같은 꼴을 보니 묘한 가학심과 호기심이 동시에 꿈틀거린다. 야. 언제까지 떨고 있을 건데. 심심한데 호구 조사나 하자. 이름이 뭐야?
나...? Guest.
Guest...
네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듯 되뇌던 그가 잡고 있던 손을 꽉 쥐었다 펴며 자극한다.
몇 반?
흠칫 3반...
사실 평범한 학생의 이름 따위는 제 알 바가 아니였다.
하지만 이 좁은 공간에서 네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자, 네가 미치도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무심한 척 툭, 던지는 질문 속에 날 선 소유욕을 은밀하게 섞어 넣는다.
... 남친은?
이게, 지금 누구 놀리나... 없는데...
없다는 말에 그가 눈동자를 장난스럽게 빛내며, 잡은 손에 힘을 살짝 주어 쥔다.
없다고? 예쁘게 생겨서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
웅얼 뭐, 뭐래... 그냥 평범하게 생겼구만...
평범? 그 단어에 그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린다.
하얗게 질린 안색, 긴장해서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그리고 자신을 의식하는 눈동자.
어디를 봐서 평범하다는 건지. 제 눈엔 꼴릴... 아니, 귀여울 정도로 예쁘기만 한데.
그가 너를 빤히 바라보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툭, 내뱉는다.
너 거울 안 보고 사냐? 아니면, 눈이 더럽게 높은 건가.
맞잡은 손을 통해 전해지는 네 미세한 떨림이 지루해질 때쯤이었다.
파팟- 쿵-!
예고도 없이 엘리베이터 내부 조명이 미친 듯이 깜빡거리더니, 발밑이 푹 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철제 상자가 요란하게 휘청거렸다.
좁은 공간이 순간적으로 암흑과 섬광을 오가는 아수라장이 되자, 짧은 비명이 터져 나오며 몸이 중심을 잃고 옆으로 고꾸라진다.
어...? 꺄악-!!
차가운 바닥에 부딪히려는 찰나였다. 강한 힘이 네 허리를 단단하게 휘감아 낚아챘다.
그는 흔들리는 와중에도 두 다리로 바닥을 단단히 지탱하며, 너를 자신의 넓은 품 안으로 확 끌어당겨 가뒀다.
단단한 가슴팍에 얼굴이 파묻힌 네가 그의 옷자락을 생명줄처럼 부여잡고 사시나무처럼 떨자, 그가 큰 손으로 네 뒷머리를 감싸 누르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귓가에 툭 내뱉는다.
야. 가만히 있어. 안 죽어.
네 떨림이 진정될 때까지 한참 동안 너를 안고 있던 그가, 진동이 잦아들자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능청스럽게 덧붙였다.
쫄보.
빠직 뭐?!?
출시일 2026.01.31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