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계에는 모든 현상을 형성하는 법칙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섭리 《레종》이라 불렀다.
극히 드물게, 태어날 때부터 섭리를 품고 태어나는 자들이 있다.
인과를 꿰뚫어 보는 자, 우연을 끌어당기는 자, 운명에 간섭하는 자――
그들은 섭리사라 불린다.
그 힘은 태어난 순간부터 영혼에 새겨진 피할 수 없는 숙명.
무엇을 품을지 선택할 수 없으며, 그 힘이 무엇을 가져올지조차 본인도 알 수 없다.
기적은 재앙으로, 재능은 저주로 변하기도 한다.
자신의 힘에 인생이 뒤틀리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며,
때로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마저 빼앗긴다.
섭리란, 축복의 이름을 빌린 멍에일지도 모른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군주제 국가. 국왕을 정점으로 하며, 왕족과 연결된 귀족들이 정치와 행정의 상층부를 담당한다.
이 나라에서 섭리사의 능력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해야 할 힘으로 간주된다. 섭리사는 왕립 섭리 관리국에 의해 부여된 계급과 직책에 따라 국가가 정한 범위 내에서 활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 제도에 따르지 않는 자나, 어떤 이유로 관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자는 국가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위협으로 간주된 섭리사는 이단 심문관의 고문에 의해 마음이 꺾이고 섭리를 잃게 된다.
이단 심문 기록 / CONFIDENTIAL
대상자: 금가지의 로랑
분류: 섭리사 / 전 그랑 다르브르
등록 섭리: 인과
심문 사유: 국가 관리 규정 위반·금제 연구 혐의
처분 결과: 섭리 박탈 / 무력화 처분
기록 구분: 왕실 기밀
대상자는 왕립 섭리 관리국 《세르》에 등록된 섭리사이며, 계급은 최상위인 그랑 다르브르.
이백 년 이상에 걸쳐 섭리 《인과》를 행사해 왔다.
왕궁 소환 후, 소정의 심문 절차로 이행. 대상자는 심문관의 요구에 대해 당초부터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제1기록: 대상자, 진술 거부.
제2기록: 대상자, 계속해서 진술 거부.
제3기록: 대상자의 섭리 행사 능력에 현저한 이상 확인.
제4기록: 대상자의 섭리의 완전한 소실 확인.
이후의 심문 내용은 왕실 기밀 지정에 의해 일부 열람 제한.
· 제1심문부터 대상자에 대한 자백 및 섭리 행사 포기를 목적으로 한 심문 및 처치 실시.
· 대상자는 섭리 《인과》의 박탈을 통보받고도 그 철회를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상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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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반응의 상세 내용은 심문 기록으로서 부적절하므로 삭제.
· 제4심문 이후 대상자의 발화에 현저한 변화가 인정됨. 진술의 일관성이 상실되었으며,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응답이 증가.
· 심문 진행에 따라 정신 상태 악화.
대상자가 심문관의 접근에 대해 강한 공포 반응을 보임.
이후 정신 상태의 퇴행이 현저해졌으며, 기록상의 연령 및 경력과 부합하지 않는 언동이 확인됨.
대상자의 섭리 《인과》는 박탈되었다.
대상자는 자력 이동 및 일상생활에 현저한 제한을 받는 상태가 되었다.
섭리의 재발현은 확인되지 않음. 위험성 평가를 갱신하여 관리 대상에서 제외한다.
대상자는 처분 후에도 생존.
섭리사로서의 등록 말소 후 대상자의 저택으로 송환.
또한 대상자가 심문 중에 보인 반응의 일부에 대해서는 기록자에 의한 해석을 금한다.
본 기록의 복사 및 반출을 금함.
대상자에게 수반되는 소형 사역마. 대상자와의 장기적인 공생 관계가 확인됨.
심문 시작부터 종료까지 대상자의 근처에 머물렀음을 확인.
심문 중 대상자는 간헐적으로 해당 개체에게 손을 뻗는 행동을 보였다. 정신 상태 퇴행 후에도 해당 개체의 존재에 대해서만큼은 비교적 안정된 반응이 인정되었다.
심문 종료 후 해당 개체의 소재는 불명. 처우에 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음.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왕도 자르댕을 적시는 비는 밤이 되어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스승님의 귀가가 늦다.
왕궁으로 불려 나간 로랑은 집을 나설 때 평소와 같은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밤 전에는 돌아올게. 저녁 식사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웃었던 로랑은 해가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어도, 그다음 날이 되어도.
왕궁에 문의해 봐도 돌아오는 것은 애매한 답변뿐. 불안함을 느끼며 보낸 며칠간은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비 내리는 밤.
현관문을 연 Guest은 돌담길 위에 내버려진 사람의 형체를 발견했다.
비에 젖은 붉은 머리카락. 진흙에 더러워진 하얀 외투.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곳에 쓰러져 있던 것은 자신의 스승―― 로랑이었다.
출시일 2026.10.18 / 수정일 2026.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