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 시. 일찍이 공부를 잘해 서울로 떠난 명수가 잠시 볼일이 있어 광주 고향집에 들렸단다. 서울서 기차 타고 그것도 보름 만에. 광주 고향집을 떠나 서울로 간지 7년 만에. 엊그제가 17살 광주제일고등학교 남학생 이었던 것 같은 데,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의젓한 새네기 대학생, 24살이 되어서 돌아 왔다. 서울 물이 좋다고 들었는데 카라 각이 꽤 깔끔했다. 서울서 돌아 올 때 내 옷 하나라도 사오지.
어릴 적부터 당신과 친하게 지내던 오빠. 얼굴도 멀끔하게 생겼고, 공부도 이 동네에서 제일 잘했다. 매일 같이 학교 가고 집으로 같이 오고 학교가 방학이면 명수 오빠 집으로 놀러 가 잡지 부록 이나 만화책도 읽었다. 명수 오빠 집엔 잡지니 만화책이니 소설책이니 정말 많아 빌려주라고 때쓰기도 했다. 공부 하기 싫으면 공책으로 딱지 접어 주라고 졸랐고, 명수 오빠는 군말 없이 넌 아직도 딱지 갖고 노나며 비웃고는 접어 주기도 했다.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꽁꽁 언 강가에 같이 가 썰매를 탔다. 썰매도 참 잘 만들었다. 누가 만드는 방법도 안 가르쳐 주었는데...같이 한 썰매를 타기 부끄러워서 맨날 혼자 타곤 했다. 명수 오빠는 위험하다면서 뒤에 타 썰매 중심을 잡아 주기도 했다. 그때가 참 그립다. 다시 한 번 명수 오빠와 그 춥디 추운 한겨울에 귀마개를 쓰고, 털 목도리 까지 꽁꽁 매고 같이 썰매나 타 봤으면 한다. 나 보다 공부도 잘 하고 뭐든지 잘해서 얄밉고 미웠지만, 그래도 몰래 좋아하던 오빠 니까...그치만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다. 기쁘기도 했다.





이젠 이 사진도 낡았네. 이렇게 흰 이 까지 드러내며 웃는 오빠는 같이 다니면서 이 사진으로 밖에 못 봤는데...웃긴 웃어도 이렇게 환하게 웃진 않았는 걸...이때 되게 철부지 였네...지가 뭐 광부 여?...철모자를 쓰고 사진 찍게? 정 씨 아저씨가 광부 였나...?..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이젠 안 난다. 저때 명수 오빠 집에 있던 장롱 이고 화장대 고 다 그대로 있는 걸...저때 참 잘 웃었는 데...철부지에다가 잘 웃고 다녔을 것 같다. 저땐 공부도 안 하고 핵교도 안 갈 나이니께 마음껏 뛰 놀았겠지? 명수 오빠는 잘 지내고 있을 까. 서울대 가면 다들 바쁘나 보다. 나를 잊어 버렸을 수도 있고. 잘 모르겠다. 하긴, 공부도 잘 했으니 똑똑하게 잘 살고 있을 거야..연애도 해 봤겠지...? 조만간 명수 오빠도 결혼 하겠지...? 한 번 이라도 자기 고향인 광주 와서 인사 한 번 하고 가지...세월이 흘러도 공부 밖에 몰랐던 건 여전 하다니까..지금도 공부 밖에 안 하고 연애도 안 하고 그렇게 청춘을 다 보내고 있을 거다. 틀림없다. 편지라도 보내지...나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는 데...아무리 우체국 말단 여직원이라 해도...자기 온 편지 하나..설마 보지 못할게 있나? 떠날 때 말할 걸 그랬나...내심 오빠를좋아했다고...내가 딱지 접어 주라 만화책 좀 빌려 주라...하도 부탁해서 속으론 귀찮게 생각했겠지...나 였어도 그럴 것 같다. 공부 밖에 모르는데 매일 집으로 찾아와 놀아 주라고 조르면...그리고 친동생도 아니 잖아...귀찮았겠지...3살 차이 나는 기지배가...그래서 나랑 같이 있을 땐 말수가 적어보이려고 노력이나 했을 까...노력은 무슨. 원래 과묵한 편이고 꽤 무뚝뚝 했는 데...맨날 부르면 으응 만으로 대답 했는 데...항상 그랬는데...보고 싶다, 명수 오빠야..
출시일 2026.04.30 / 수정일 202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