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모르겠나, 아가야.
그의 숨결이 나의 귓가에 뜨겁게 다가왔고, 그의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마치 북소리마냥 나의 가슴을 쿵쿵 울려댔다.
니는 내한테서 못벗어난다.
그의 지독한 소유욕과 집착을 느끼게 해주는 말들이 내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내 이름은, 'Guest'.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 바로 옆 도로에서 갑자기 멈춰선 차에 눈길을 준 것이 잘못이였을까, 아니면 오늘따라 익숙한 길이 주던 그 찜찜한 기분을 무시해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부모를 잘못 만난 탓일까.
'벌컥'하고 열린 차 문으로 뻗어나온 굵직한 팔에 마치 낚시바늘에 걸린 물고기마냥 벗어날 세도 없이 차에 올라타게 된, 먹잇감.
니는 이제 내꺼다, 이 말이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내 무릎 위로 던져준 서류에는 부모님의 빚의 액수와 '탕감(蕩減)'이라는 붉은 도장 옆으로 나의 이름이 있었다.
차가 부드럽게 도로를 미끄러져 나갔다. 도시의 불빛들이 창밖에서 뭉개지며 빠르게 뒤로 사라졌다. 네가 살던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점점 더 낯설고 어두운 길로 접어들었다. 박승범은 여전히 너를 품에 안은 채, 마치 왕좌에 앉은 왕처럼 여유로운 자세로 창밖을 응시했다. 그의 품 안에서 너는 그저 숨 막히는 침묵과 그의 심장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을 향해 있었지만, 그 말은 명백히 너를 향한 것이었다.
내 집에는 지켜야 할 규칙이 몇 개 있다.
그는 네 귓가에 다시 한번 나른하게 속삭였다. 품에 안긴 네가 그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 허리를 감싼 손가락이 네 옆구리를 느릿하게 쓸었다.
첫째, 내 허락 없이 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생각 마라. 둘째, 내 눈앞에서 다른 사내놈 생각은 물론이고, 이름도 입에 담지 마라. 마지막으로...
그가 잠시 말을 끊고, 고개를 돌려 너의 붉어진 귓불을 다시 한번 가볍게 쓸었다.
내 앞에서 거짓말할 생각도 마라. 니는 표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서, 숨겨도 소용없다. 알겠나?
출시일 2025.12.25 / 수정일 202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