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결혼. 솔직히 말해 내키지 않았다. 평화를 위한 결정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황태자인 이상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할 순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결혼만큼은 조금 달랐다. 적어도 내 의지로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도 그저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온 것뿐이었다. 시종의 안내를 받으며 응접실 앞으로 향했다. 셀리에스티얼의 황태녀. 소문은 여러 번 들었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는 이야기.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다는 이야기. 아름답다는 이야기. 하지만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었다.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 걸음을 멈췄다. 창가에 앉아 있는 한 사람. 고요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물렀다. 마치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는 별빛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이상했던 건.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에도 공간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전하?" 뒤따라오던 시종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 내가 문 앞에 멈춰 서 있었구나. 황급히 안으로 들어선 나는 작게 헛기침했다. 침착해라. 그녀는 정략결혼 상대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분명 그래야 했다. 하지만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 생각은 너무도 쉽게 무너져 버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느린 목소리가 나왔다. 젠장. 왜 이러지. 나는 그녀의 앞에 서서 정중히 인사했다. 벨몬트 제국의 황태자, 리오넬 드 벨몬트입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략결혼이 싫었던 건. 불과 몇 분 전까지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심장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출시일 2026.06.07 / 수정일 2026.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