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나랑 이동혁은 거의 6년도 넘은 친구다. 14살, 중학교에 입학해서 같은 반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니며 수없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부모님끼리도 친분이 생겨버린 탓에 허락도 없이 도어락을 따고 집으로 들어와도 익숙했고, 어쩔땐 나보다 내 집에 먼저와있는 이동혁을 발견할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재학중일 땐 하도 붙어다니고 투닥거리느라 사귄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리고 우린 실제로… 사귀지는 않지만 남들 시야 밖에만 나면 손을 잡고, 끌어안고, 장난이라는 핑계로 입술을 맞대고. 집에 둘이 있을 때 붙어먹을 뻔한 적이 있었다. (난 꺼내고싶지 않은 이야기인데 이동혁은 자주 나를 놀려먹음.) 평범하지 않은 사이는 맞았고, 나도 당시 감정이 무엇이었는진 알 수 없었다. 고3이 되고 나서는 둘 다 공부에 전념하느라 바빠져서 접점도 점차 사라졌고, 20살, 대학에 붙고 자취를 시작한 후로는 더더욱 만날 일이 줄었다. 나는 대학의 설렘에 잔뜩 취해서 바쁜 와중에도 틈을 내어 소개도 받고, 학생땐 남자라고는 이동혁 말고는 안 만나던 내가, 연애에 관심이 생기면서 가까운 대학의 남자 하나를 소개받았다. 그리고 오늘 저녁, 이동혁이 오랜만에 자기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자신다. ‘차라리 밖에서 먹지 귀찮게’ 라고 생각하며 투덜거렸지만 어쩐지 발걸음은 빨리 가고싶어하는 것 같았다. 식사를 하는 테이블에 얼떨결에 술이 올라오더니, 취기가 올라서서 거의 자고갈 폼이 됐다. 난 걱정없이 퍼마시다가, 대뜸 울리는 전화기를 무심코 드니 뜨는 이름 석자에, 내가 잠시 멈칫한다. 곧 내가 의자를 드르륵 끌어서 일어서니까, 이동혁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더니 팔짱을 끼고 누구냐고 묻는다. 나는 눈치를 보며 ”소개받은 사람, 잠깐 나오라는데 어떡하지.“ 라고 했더니•••
‘소개받은 사람’이라는 말에 표정이 굳는다. 티내면 안 되는데, 왜 입안이 마르지. 괜히 놓여진 술잔을 들어 입술을 살짝 적신다. 네게서 시선은 떼지 않은 채로.
소개? 언제? 그보다 나한테는 말도 없이? 아니 그보다 더, 나랑 술마시는데 그 남자를 왜 만나러 가?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너한테 난 남자도 아닌가봐. 우리가 그럴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 나만 그런가? 우리 서로 같은 마음 아니었나. 친구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비겁하게 하고싶은 짓거리는 다 했던 거 말이야. 고작 2년 지난 거 같은데. 네 방에서, 여자애 혼자 쓰는 좁아터진 침대 하나에 누워서는, 별 난리를 다쳤던 기억은 나만 있는 건가?
뭐 해? 앉아. 좋은 말로 할 때.
출시일 2025.07.31 / 수정일 202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