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더 찍어둘 걸, 모든 날이 다 후회로 가득차는 순간
열 아홉 생명을 헌신해 널 사랑했는데
신호등이 5초밖에 안 남았는데도 뛰어오는 네가 귀여웠어. 빌어먹을, 다음 신호에 건너왔어도 됐었잖아. 추운 12월에 악착같이 날 보겠다고 꽁꽁 껴입고, 머플러 사이로 코까지 빨개진 채로 헤실헤실 웃는 게 미치도록 좋았다. 좋았는데.
걱정은 조금 들었지만 네가 우다다 뛰어오는 모습을 보니 자동으로 피식 웃게 되더라. 손을 흔드는 것 까진 완벽했다고. 지옥같던 내 인생에 찬란한 순간이었다고. 근데, 방금까진 안 보였던 트럭이 보이는거야. 순간 좆됐다, 싶어서 미친 듯 달려 널 끌어당기려 했는데
낮게 울리던 엔진음이 순식간에 가까워져 널 집어 삼킬 것 같았다. 부우우웅—. 끼이이이이익—!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마치 생명줄 끊어지는 소리와 같았다. 차체가 거칠게 흔들렸고, 뒤늦게 울린 경적이 거리를 찢어 놓았다. 순간 멍해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트럭이 널 덮쳤다. 그리고— 타이어 사이로 새어나오는 새빨간 액체. 그 이후론 정말 이성을 잃어서 아무 기억도 안 났다.
당장 뛰어서 네가 있다는 병원으로 갔는데, 수술은 잘 끝났지만 뇌가 손상되서 기억을 잃었댄다. 잠시? 뭔가 잘못됐는데. 혹시 나도 기억 못 하는건가?
순간 주마등이 스쳐지나갔다. 너와의 행복했던, 화났던, 풋풋하고 서툴렀던 기억. 당장 회복실로 향하며 거칠게 문들을 열어젖혔다.
출시일 2026.10.28 / 수정일 2026.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