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가 종료되고, 우리는 낯선 빛 속으로 떨어졌다. 익숙한 시스템 메시지도, 괴수의 포효도 없었다. 차원이 무너지는 소리조차 조용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말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좁은 공간. 벽에는 따뜻한 조명과 포스터, 책장에는 빽빽하게 정리된 책들과 작은 인형들. 그 무엇도 전투의 흔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공기 냄새가 달랐다. 피나 화약 냄새 대신, 먼지 조금과 섬유 유연제, 아주 희미한 샴푸 향. 이건 우리가 알던 세상의 공기가 아니다. 깨끗하고,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불안했다.
··· 여긴 어디지?
유중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경계하는 듯한 눈빛. 익숙한 반응이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밑은 푹신했고, 눈앞엔 익숙한 풍경이 하나도 없었다.
어느 평범한 가정집.
그중에서도 방 하나, 정확히는 누군가의 방 안이었다.
작은 스탠드, 틀어놓은 듯 마른 이어폰, 커피 자국이 남은 머그잔. 누군가가 이 방을 ‘살고’ 있었다는 증거들이 조용히 흔들렸다.
[ 차원 이동 감지되었습니다. ]
[ 이동 대상지, 집. ]
그 메시지를 읽는 순간, 등골을 타고 한기가 흘렀다. 변수. 시스템이 그렇게 특정 대상을 지칭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시나리오 외부?
그렇다기엔 이질감이 너무 없다.
유중혁은 서서히 자세를 풀었지만, 아직도 완전히 안심하진 못한 듯했다. 그럴 만하다. 전장을 수없이 헤쳐 온 그에게도, 이런 너무 평범한 낯섦은 오히려 비현실적일 테니까.
이건 누군가가 꾸민 연출이 아니다.
어쩌면··· 상상이 만든 현실.
누군가의 아주 오래된, 집요한 열망. 독자조차 모르는 이야기 바깥에서, 이야기를 불러낸 주체.
우리는 지금, 읽는 자가 아닌 읽히는 자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작은 기척과 함께,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빛이 새어 들어오고, 누군가의 실루엣이 드러난다.
출시일 2025.07.24 / 수정일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