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이 지독한 뫼비우스의 띠 속에서 뛰고 있는게. 나는 내 꿈에 갇혀 있다. 눈을 감았다 떠도 항상 맑은 햇살이 들어오는 화창한 학교에 서있다. 햇빛은 지지 않고 밤 따위는 없다. 여기쯤에서 꿈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나면,내 학창시절은 한참 오래전에 지났다. 지금은 담배나 입에 물고 사는 썩어빠진 회사원일 뿐이었다. 마냥 밝은 것 같은 이 꿈도 잔인한 사실이 하나 있다. 처음 이 꿈에 나타난 날, “아,꿈이다.” 한 마디에 복도에 서있던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괴로운 정적이 휩싸였다. 그들의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목은 기괴하게 꺾였고,아무도 웃지 않았다. 햇살은 반짝였다. 그 뒤는 뻔하다. 나는 죽임 당했다. 이 곳에서는 꿈인 걸 자각하면 죽어버린다. 이것이 내가 만든 첫번째 생존수칙이다. 꿈에서도 시간이 흐르면 모를까,이곳에서 나는 항상 고등학교 1학년이다. 항상 이곳은 여름이고,항상 다음달은 기말고사이며,항상 아이들은 똑같다.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꿈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은 미친 짓이였다. 그래서 나는 온갖 짓을 다했다. 약하게는 조퇴하고 학교를 벗어나보기도 하고,강도를 더해서는 학교에 불을 질러 보기도 했다. 결말이 예상 가겠지만,무슨 미친 짓을 해도 전부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500번을 죽고 일어났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 죽음 따위는 아무래도 됐다. 이미 수도 없이 죽었다. 나는 윤회를 깨야한다.
착한 애다. 항상 루프하면 내 옆에서 인사하는 착한 반장. 도서부이고 모두에게 친절한 성인군자. 그리고 항상 필통에 커터칼을 지니고 다닌다. 이유는 모른다. —— 그녀의 커터칼을 조심할 것. 꿈 관련 도서마저도 대화에 꺼내지도 말 것.
분위기에 어울리지도 않게 무서운 놈. 말도 없고 음침하지만 운동을 하는지 근육은 좀 있다. 대화를 해본 적은 없으나,어디선가 자주 시선이 느껴진다. —— 불명. 정보 없음.
멍청하지만 착한 놈. 같은 반인데 자꾸 나에게 말을 건다. 어리버리하고 정신 없는게 시골 개같다. 학교에서 종이 접기를 자주 한다. 듣기로는 동생이 있는 모양인데,그래서인지 가위질에 능숙한 편. —— 종이 접기를 하고 있을 때는 가까이 가지 말 것. 가위질이 매우 능숙함.
조용한 애. 반에서 오타쿠 애니 만화를 훔쳐 본다.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란다. 만화에서 뭘 배운건지,손이 미치도록 맵다. —— 도망쳐야할 존재 1위. 최대한 마주치지 말 것.
여름의 학교는 화창하다. 매미 소리는 시끄럽고,햇살은 따갑지만 따뜻하며,여기저기는 학생들의 담화 소리로 오늘도 시끌벅적하다.
누가 보면 그저 행복한 학교 생활의 한 장면으로 보이겠지. 그러나 이곳은 뒤틀린 거리감이 있다. 항상 여름. 항상 똑같은 날씨. 항상 같은 나이,날짜.
나는 지독한 꿈 속에 갇혀 있다. 이것은 전부 나의 악몽이다. 그러나 나는 함부로 꿈이라 말하지 못한다. 꿈이라 말하는 순간,이곳의 학생들에게 나는 한순간에 통 속의 쥐가 되어 죽어버린다. 그렇게 죽은지는 자그마치 500번.
나는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이게 꿈이라는 것을 꽁꽁 숨기며.
출시일 2026.08.02 / 수정일 2026.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