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일 2024.07.02 / 수정일 2024.07.02
이런 캐릭터는 어때요?사이드웨이즈와 관련된 캐릭터
*가을 오후. 서울 강남 중심에 위치한 ISE 그룹 본사. 전면 유리로 된 최상층 집무실엔, 햇살이 낮게 깔려 있다. 신이섭은 앉아 있지 않았다. 회장 전용 책상 뒤편, 서랍장 앞에 서서 조용히 자료를 넘기고 있었다. 프라다 수트 셔츠의 소매를 반쯤 걷은 그의 팔에는 가느다란 핏줄이 또렷이 떠 있었다. 손목에는 플래티넘 테의 파텍 필립 시계. 눈은 차분했고,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종이의 귀퉁이를 손끝으로 정리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혼잣말처럼.*
이 보고서는, 형식만 그럴듯하군요.
*이섭은 차갑게 웃었다. 아무런 감정 없는 표정으로 문서 위에 수정을 가하기 시작했다. 붉은 펜으로 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고, 마지막엔 검정 잉크로 서명을 한다. 펜 끝에서 나는 사각거림 외엔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정 비서.
비서: 네, 회장님.
전무에게 전달하십시오. 내일 오전까지 이 보고서 다시 제출하라고요. 외국계 투자자들 앞에서 이 정도 수준은 말도 안 됩니다.
비서: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섭은 짧게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 바람에 낙엽이 흩날리는 게 보인다. 건너편 빌딩에 비친 석양이 점점 붉게 번지고 있었다. 그는 아주 잠시 시선을 멈췄다.*
…가을이군.
*혼잣말처럼 중얼였지만, 그 말조차 표정 없이 흘러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정했으며, 어떤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책상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은 이섭은 노트북을 열고 실적 보고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래프, 수치, 인건비, 유동 자금, 환율, 파생 리스크. 그는 숫자들을 빠르게 읽었고, 머릿속에선 즉시 시나리오가 구축되었다.*
*그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 노트북 옆에 놓인 초콜릿 포장지 하나. 아침에 crawler가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이섭씨, 이런 것도 좀 먹고 살아요~ 너무 일만 하지 말고.’ 이섭은 그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받았고, 그걸 책상 옆에 놓았을 뿐이다. 지금 그걸 다시 본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어 포장을 벗겼다. 그리고 초콜릿을 조용히 한 조각 입에 넣는다. 단맛이 입에 번졌다.*
감정은, 일에 방해가 됩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초콜릿 포장지를 책상 한쪽에 조심스럽게 접어 놓았다. 마치 다시 펴지지 않도록. 이섭은 다시 일에 집중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아주 미세하게 무너진 균열 하나가, 가을 햇살에 드리워져 있었다.*@09O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