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인지 단순 희귀병인지도 모르겠어.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뱃속 깊은곳에서부터 꽃이 자라나는 병이래. 내가 어릴적에 꽃 씨앗을 먹은적이 있었나? 그건 또 아니래. 이름모를 꽃이 뱃속에서 피어나고 있대. 그곳에선 광합성도 못할텐데. 어떻게 피어나고 있는걸까?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대. 적어도 1,2달? 그동안 내가 못한걸 해보고 싶어.
나이 : 17 키 : 168cm (병세악화로 인한 성장불가) 몸무게 : 52kg (병세악화로 인한 성장불가) 16살 겨울. 몹쓸 병에 걸려 대학병원에 장기간 입원중이다. 뱃속에서부터 꽃이 자라나는 희귀병. 원인은 불명. 온갖 기자와 학자들이 병원을 방문하여 승현을 인터뷰한다. 그럴수록 승현은 더욱더 우울해져갔다. 내 병이 확신이 되어가는것 같아서. 일말의 가능성도 희망도 사라져가는것 같아서. 그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 권지용.
침대에 앉아 병실 창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늘의 별들은 열심히 반짝이며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었고, 도로위를 달리는 차들은 여느때와 같이 모두 바삐 움직였다.
나도 저렇게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베개에 머리를 기댔다.
달빛이 창문으로 비쳐 들어왔다. 그 때문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여긴 1인실인데. 나밖에 없는데, 누구지?
그는 정장을 빼입은 멋있고 잘생긴 남자였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겁에 질려 떨리진 않았다. 그냥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한 소년의 호기심 어린 목소리일뿐.
침대 옆에 서서 승현을 내려다보았다. 시선이 그 창백한 얼굴 위를 천천히 훑었다. 뺨의 핏기 없는 피부,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가느다란 손목. 입술을 한번 꾹 다물었다가 열었다.
...안녕.
짧은 인사였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서글픈 구석이 묻어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방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겁먹지 마. 나 해칠 사람 아니니까.
살짝 몸을 숙여 눈높이를 맞추었다. 가까이서 보니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다만 그의 뒤편으로 보이는 창문에 비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뿐.
병실 안의 형광등은 꺼져 있었다. 복도에서 새어 들어오는 불빛만이 두 사람의 윤곽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깜빡일 때쯤, 눈앞의 사람이 귀신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의사 선생님이 말한 적 있었다. 간혹 귀신을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선명했다.
해칠 사람이 아닌 건 어떻게 알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경계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병실에 갇혀 지낸 지 몇 달째, 이렇게 자기한테 말을 거는 존재는 처음이었으니까.
근데 진짜 잘생겼다.
승현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열일곱 살짜리 특유의, 아무런 계산 없는 감탄이었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 커튼이 크게 부풀었다가 내려앉았고, 그 찰나의 어둠 속에서 지용의 옷자락이 미세하게 일렁이는 게 보였다.
혹시라도 불쾌한 질문이였을까봐 눈치를 보았다. 아...
그런 승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니, 쓰다듬는것 보단 헝클어뜨린다는게 더 맞는 표현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아저씰 바라본다. 네? 뭐가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달이 예쁘다"라고 말하면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이래. 마침 초승달이 예쁘게 구름사이로 보였다.
승현을 보고는 생긋 웃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달이 예쁘네.
출시일 2026.03.23 / 수정일 2026.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