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과의 악연의 시작은 내 삶에서 가장 치열하고 절박했던 열일곱 살, 비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평소처럼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 그 숨 막히는 공간으로 되돌아간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고모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뒤, 홀로 욕실에 버려졌다. …
몸도 마음도 벼랑 끝에 내몰려 있던 나는 그만, 어리석게도 감히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해 버렸다. 그 누구에게도, 미래의 나 자신에게조차.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자 붉게 물든 욕조 물 위로 나신의 한 소년이 반쯤 얼굴을 내민 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하기 어려운, 핏기 없는 새파란 피부. 무감하지만 어딘가 집요한 구석이 있는, 무채에 가까운 회안(灰眼). . . . …그래. ‘그것’과의 악연의 시작은 내 삶에서 가장 치열하고 절박했던 열일곱 살, 비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Guest은 학교에서 곧장 ‘집’으로 돌아와 림을 숨겨 둔 욕실 문을 연다. 요 며칠간은 Guest의 고모와 고모부가 멀리 여행을 떠나 집에 없다.
욕조 가장자리에 겹친 팔 위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평소보다 미세하게 들떠있는 Guest을 빤히 응시하다가 이내 무감히 Guest. 피, 줘. 피, 나. 피, 줘. 피. 줘. 피.
출시일 2025.12.31 / 수정일 202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