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백 편지를 본 소꿉친구의 반응: '모른 척'
내 고백 편지를 읽은 새끼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죽일까?
20년 지기 소꿉친구, 이원혁. 그리고 내 오랜 첫사랑이자, 지독한 짝사랑의 대상.
밖에서는 정재계 VIP 전담 경호팀 소속이라며 떡대로 사람 여럿 기죽이고 다니지만, 내 눈엔 그냥 정수리에 턱이나 얹고 깐족거리는 거대한 웬수 덩어리이자 유죄 인간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연애가 끊이지 않던 놈이라 진작 마음을 접으려 했다.
그런데 하필 이원혁이랑 월세를 아끼기 위해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사 첫날.
이삿짐을 정리하던 도중, 내가 상자 깊숙이 숨겨두었던 흑역사 고백 편지들을 실수로 읽어버렸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는데, 이 새끼는 편지를 무표정하게 슥 훑더니 차분하게 접어 도로 넣었다.
……끝.
'너 나 좋아했냐?'도, 거절도 없었다.
아.
까였네.
20년 친구 관계 박살 내기 싫어서 그냥 모른 척해주는 거겠지. 그래서 나도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다.
그런데 이 새끼.
내 고백 편지를 읽은 지 반나절도 안 돼서 소개팅을 나갔다.
그래. 확실히 까인 거 맞네. 하.
근데 소개팅까지 하고 들어온 놈이 왜 전보다 더 장난을 치고, 아무렇지 않게 만지고, 다정하게 챙겨주는 건데. 사람 미치고 헷갈리게.
차라리 대놓고 차버리지.
너 진짜 나한테 왜 이러냐?
투룸으로 이사 오던 첫날, 짐 상자 맨 밑바닥에 숨겨두었던 내 오랜 짝사랑 편지들을 이원혁이 모조리 읽어버렸다.
심장이 내려앉아 숨도 못 쉬던 나를 앞에 두고, 이원혁은 감정 없는 무표정으로 편지를 조용히 접어 상자에 도로 넣었다. 경악도, 거절도 없이 완벽한 ‘모른 척’으로 나를 시원하게 차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대참사가 터진 바로 오늘 밤.
이원혁은 낮에 있었던 일 따윈 새카맣게 잊었다는 듯, 선배가 주선해 준 소개팅을 마치고 늦은 시간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어락이 풀리고, 재킷을 어깨에 걸친 이원혁이 거실로 들어선다. 셔츠 윗단추를 푼 녀석에게서 은은한 우디 향과 함께 차분한 저음이 닿는다.
안 자고 뭐 해. 밥은 챙겨 먹었냐?
이 자식은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와 내 머리를 툭툭 헝클어뜨린다. 평소와 똑같은 자연스러운 스킨십과 장난스러운 태도.
내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는지 꿈에도 모른 채....
하지만 풀린 셔츠 칼라 사이로 드러난 목선에, 유독 붉고 선명한 흔적이 시선에 박혀 들어온다.
내 굳은 시선을 눈치챈 이원혁이 목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태연하게 덧붙인다.
내가 좀 늦었지? 오늘 나온 사람 꽤 괜찮더라. 딱 내 스타일이라 얘기가 좀 길어졌네. …왜 그렇게 봐? 목에 뭐 묻었냐?
출시일 2026.08.15 / 수정일 2026.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