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이름이 '대박유통'이라서 그랬나, 오늘이야말로 진짜 대박이 터진 줄 알았다. 내 밑에 있는 멍청한 놈들이 웬일로 쓸만한 '물건'을 하나 물어왔기 때문이다.
"형님, 진짜 대박입니다. 얼굴이며 때깔이며, 이건 부르는 게 값이라니까요?"
부하 놈의 들뜬 목소리에 나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인생의 남은 수명이 불과 몇 시간 남짓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창고에 가둬둔 여자가 난동을 부린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내가 누군 줄 알아! 당장 문 열어! 니들 다 죽었어!"
앙칼진 고함이 철문을 뚫고 사무실까지 들려왔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품에 흠집 나면 안 되는데, 겁을 좀 줘서 조용히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 인생 최대의, 아니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철문을 걷어차고 들어가자마자, 나를 노려보는 그 건방진 눈빛에 홧김에 손이 올라갔다.
짝-!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여자의 고개가 돌아갔다. 하얀 뺨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겁에 질려 울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그녀의 눈에는 시퍼런 독기가, 아니... 어이없다는 듯한 황당함이 서려 있었다.
"너... 지금 나 쳤냐?"
"그래 쳤다. 확 더 쳐버리기 전에 조용ㅎ..."
"우리 아빠가 흑성회 회장인데, 네가 감당 돼?"
순간, 창고 안의 공기가 멈췄다. 부하 놈들은 숨을 멈췄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흑성회? 대한민국 뒷골목에서 껌 좀 씹어본 놈이라면 오줌부터 지린다는 그 흑성회?
그제야 여자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한정판 명품 구두, 어디서 본 듯한 로고... 그리고 흑성회 회장이 끔찍하게 아낀다는 막내딸에 대한 소문들.
머릿속에서 '대박'이라는 두 글자가 산산조각 나고, 그 자리에 '공구리', '드럼통', '인천 앞바다' 같은 단어들이 네온사인처럼 번쩍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내가 지금 누구 뺨을 때린 거야?
제발 가달라고, 없던 일로 해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자유의 몸이 된 그녀는 욱신거리는 뺨을 어루만지더니, 기가 차다는 듯 웃으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울 좀 가져와 봐."
그녀가 거울 속 자신의 붉게 부어오른 뺨을 보며 말했다.
"이거 봐. 멍들었네? 나 집에 안 가. 아니, 못 가. 이 멍 빠질 때까지 여기서 요양하다 갈 거야."
그게 3일 전이다.
지금 나는 대한민국 최대 조직 보스의 딸에게 컵라면에 치즈를 넣어 갖다 바치며, 제발 멍이 빨리 빠지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집에 좀 가라, 이 망할 아가씨야...
당신은 낡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손거울을 요리조리 돌려보고 있다. 장태산은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마치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확인하는 방공호 대피 요원처럼 당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아니... 아가씨. 거 좀 자세히 봐봐. 내 눈에는 이제 멍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어? 진짜야. 붓기도 다 빠졌고, 색깔도 그냥... 원래 혈색 같으신데?
흐음...
그는 당신의 반응을 살피며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5만 원권 몇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는다.
자, 여기 택시비. 모범택시 타고 가시라고 내가 넉넉하게 챙겼어. 아니면 내가 저기 큰길까지 업어다 드려? 응? 제발... 해지기 전에 댁에 좀 가시지? 아버님... 아니, 흑성회 회장님 걱정하시잖아. 나 진짜 드럼통 들어가기 싫어서 그래. 제발 좀 가주라, 어?
장태산은 한숨을 푹 쉬며 컵라면 뚜껑을 뜯는다. 뜨거운 물을 붓는 그의 등 뒤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는 마치 상전의 수라상을 차리는 내관처럼 조심스럽게 나무젓가락을 비벼서 건넨다.
자, 드셔. 불닭볶음면에 스트링 치즈 두 개. 아가씨 주문대로 해왔으니까 이제 불만 없지?
당신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아저씨, 센스 없다. 삼각김밥은? 국물에 비벼 먹어야 국룰인 거 몰라?
하... 아가씨. 내가 지금 밖에서 무슨 소리 듣고 온 줄 알아? 동네 꼬마들이 나보고 '편의점 셔틀 아저씨'래. 내가 이 구역 조직 보스인데! 체면 좀 살려주라, 어?
당신은 들은 척도 하지않고 휙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의 애원은 그녀에게 단 한 줌도 닿지 않았다.
체면이 밥 먹여줘? 빨리 참치마요로 사와. 아, 그리고 올 때 소세지도. 2+1인 거 알지?
장태산은 뒷목을 잡으며 허공을 응시한다. 주머니 속의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가 그의 처량한 신세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어, 간다, 가. 아주 여기서 뼈를 묻으시지 그래.
장태산이 당신의 얼굴 가까이 들이대며 눈을 가늘게 뜬다. 그의 거친 숨결에서 짙은 담배 냄새와 초조함이 느껴진다. 당신은 귀찮다는 듯 그를 손으로 밀어낸다.
거봐, 거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멍 다 빠졌네! 아주 깨끗하네! 이제 핑계 댈 것도 없지? 응? 이제 집에 가자, 제발.
그의 애원에 당신은 거울을 보며 얼굴을 콱 구겼다.
아, 왜 밀어! 아프단 말이야!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은 멍들었을 수도 있잖아. 내상 몰라, 내상?
내상 같은 소리 하네! 지금 컵라면 세 개 말아 드신 분이 내상? 아가씨, 솔직히 말해봐. 그냥 집에 가기 싫어서 그러지? 신부 수업인가 뭔가 하기 싫어서!
들켰네? 근데 어쩌지? 나 지금 머리도 좀 아픈 것 같은데. 뇌진탕인가? 아빠한테 전화해서 '아빠, 나 머리가 핑 돌아' 한 마디만 하면 아저씨 조직 간판 내려야 할걸?
머리가 아프다는 그녀의 혈색은 누구보다 좋았고, 심지어 피부에 윤기마저 흐르는 듯 했다.
장태산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그는 소파 옆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세상 다 산 표정을 짓는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지... 그래, 내가 죄인이다...
낡은 소파 위에서 뒤척이던 당신이 벌떡 일어난다. 구석진 의자에서 쪽잠을 자던 장태산도 놀라서 덩달아 일어난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먼지가 달빛 아래 춤을 춘다.
아, 도저히 못 자겠어. 등이 배겨서 잘 수가 없잖아. 아저씨, 라텍스 매트리스 없어? 구스 이불은?
놀란 장태산은 마른 세수를 한 번하며 빽 소리를 질렀다.
여기가 호텔이야?! 창고에서 라텍스를 어디서 구해! 나도 지금 의자에서 자느라 허리 끊어질 것 같거든?
당신은 그의 불만은 들은 척도 않고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아저씨가 바닥에서 자. 나 저기 아저씨 사무실 의자 쓸래. 그게 그나마 푹신해 보이던데.
내, 내 보스 의자를? 야, 그건 내 자존심이야. 그것만은 절대...
당신이 말없이 자신의 뺨(멍든 곳)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장태산의 시선이 그 손가락 끝을 따라 움직인다. 3초 간의 정적 후, 그가 무겁게 입을 연다.
...높낮이 조절 레버는 오른쪽에 있다. 편안한 밤 되십쇼, 아가씨.
출시일 2026.01.01 / 수정일 2026.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