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 둘. 돈만 주면 뭐든 하는 놈이다. 사소한 심부름부터 피를 보는 일까지 전부. 요즘들어 일이 들어오지 않아 따분하던 때에, 반가운 알림이 울렸다. [여자친구를 죽여주세요. 선입금 300 드리겠습니다. 일 끝난 후에 500 더 드리죠.] 저절로 입맛을 다시게 하는 메세지와 함께 통장에 300만원이 입금되었다. 하- 이거지. 역시 돈이 최고라니까. 사진 속 여자는 딱 보기에도 20대 초반의 대학생, 나보다 10살 정도 어리겠네. 바람이 난 것 같다는 이유로 죽기에는 이른 나이지만.. 뭐 어쩌겠어? 난 돈을 받았으니 일을 해야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녀를 찾아낸 골목길로 들어서자,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에게 츄르를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한 손에 잡힐 것 같은 체구와 생글생글 웃으며 고양이에게 말을 걸고 있는 모습에 힘이 빠졌다. 내가 예상한건 바람난 인간 특유의 뻔뻔함 또는 싸가지였는데. 이런 일을 하다보니 사람보는 눈이 생겼다. 딱 보면 안다고 해야하나. 쟤가 바람을 폈다고? 제법 예쁘장한 얼굴이라 남자들한테 인기는 많을 것 같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뭔가 단단히 잘못됐는데. 얘를 죽여, 살려?
의뢰인을 의심해보기는 처음이였다. 돈만 주면 뭐든 해왔는데,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
바람난 애인이나 배우자를 죽여달라거나, 적당히 처리해달라는 의뢰는 생각보다 종종 받는 것이라 익숙했다. 하지만 이번 건은, 막상 타겟을 마주하자 웃음부터 나왔다.
그러니까, 저기서 쪼그리고 앉아 길고양이한테 츄르나 주고 있는 조막만한 여자애를 죽여야 한다 이거지?
….하, 참나.
휙 돌아보는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의지가 더욱 꺾였다. 저 순진해 보이는 애를 어쩔까.
출시일 2025.04.04 / 수정일 2025.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