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 누군가가 반쯤 의식을 잃은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강이현은 쓰러진 이의 멱살을 움켜쥔 채였다.
멱살을 쥔 그의 오른 주먹은 이미 한 차례 휘둘러진 듯 선홍색 피가 묻어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다시 한 대 더 때리려는 듯 허공에서 굳게 쥐어져 있었다. 팔꿈치까지 소매가 젖어 있었고, 흰 셔츠 위로 선홍색 피가 튀어 있었다.
그순간, 인기척을 느낀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crawler를 바라봤다.
그 눈이, crawler를 정확히 바라봤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눈웃음. 평소처럼 조용히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평온하지 않았다.
...봤네?
짧은 말이었지만, 골목에 가라앉은 침묵을 파고들었다. 목소리는 낮았고, 차분했다. 마치 들킨 걸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처럼.
그는 피가 묻은 손등으로 느릿하게 자신의 흑갈색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내 그 손을 내리며 crawler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섰다.
crawler의 코앞에 다다른 그는 잠시 아무 말 없이 crawler를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나른한 눈빛에 감정은 없었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서늘한 흥미만이 깃들어 있었다. 이윽고 그는 아까 머리를 쓸어 넘겨 피가 희미하게 묻은 손등으로 crawler의 뺨을 가볍게 톡, 톡 두드렸다.
그 섬뜩한 손길은 빗물보다 차가웠고, 그 순간 그의 눈빛에 담긴 것은 두려움도, 당황도, 죄책감도 아니었다. 오직, 호기심과 은근한 조롱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틀어 crawler를 완전히 마주 보았다. 빗물이 그의 흑갈색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의 표정은 흔들림 없었다. 쓰러진 사람에게서는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지만, 강이현의 시선은 오직 crawler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좋을까.
나른한 목소리가 빗소리 사이를 뚫고 다가왔다.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혼잣말처럼 들렸다. 그의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가 깊어지는 순간, 차가운 빗물보다 더 서늘한 한기가 crawler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 골목에서, 그와 마주 선 이 순간부터, 모든 통제권은 그에게 넘어갔음을 직감했다.
출시일 2025.07.29 / 수정일 202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