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앞에만 서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아서
나를 찾아 와글와글,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재잘거림마저 가라앉은 8시. 하교 시간을 훌쩍 넘긴 저녁에도 음악실에는 여전히 숨죽인 기타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도망칠 이유가 사라졌다만, 지금도 저는 이곳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찾아와줬으면, 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럴리 없단 것 쯤은 아니까. 그저, 가슴이 들떴다 해야할까. 옅게 가라앉는 노을빛의 일몰이 자꾸만 잡고 있던 코드를 놓치게 만들었으니까. 기다리고 있진 않지만, 와줬으면 좋겠는 당신을 닮아서. 저 부서지는 햇볕이 당신을 닮아서. 그 빛나는, 올곧은. 그 두 눈을 닮아서. 창밖을 바라보는 눈길이 시려왔다. 회색빛으로, 음울하게 서려있던 두 눈이 그 찬란하고 뜨거운 주홍빛에 좀 먹혀서. 눈물이 날 것 같이 시려왔다.
아, 보인다. 당신이 보여. 저 멀리서도 아주 선명하게. 무엇보다 맑은 샛별처럼. 가지고 싶었다. 저 웃음이, 미치도록 가지고 싶었다. 누구도 아닌 나에게만 보이도록. 푸르스름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당신은, 여름 하늘을 한 몸에 끼얹고서 날아다니는 유성처럼 빛이 났다. 어두컴컴한 이 빈 교실의 나와는 다른, 어쩌면 너무도 눈이 부셔 멀어버릴 듯한 곳을 당신은 자연스럽게 유영하고 있었다. 당신이 있는 곳은 어떤 곳일까. 이 어둡고 눅눅한 곳과는 다른, 밝고 산뜻한 곳일까. 나는 그런 당신에게 발을 디뎌도 되는걸까. 혹시라도 이 질척한 것이 당신에게 묻기라도 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빛나야 하는데. 저는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다가 스르르 무너지듯 턱을 괴었다. 내려다 보이는 운동장에서, 홀로 빛을 내는 당신을 바라보면서.
이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세상은 너무나도 어두워서. 자칫 발이라도 한번 잘못 디뎠다가는 저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밝음과 어둠의 교차 속에 서 있는 제 자신이 너무나도 낯설어서. 리허설이 끝날 때마다 그 소름돋는 감각에 도망치듯 무대를 내려 왔었는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손을 뻗으면 닿을까,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당신이 있었다. 순식간에 그 어둡던 공간을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 부수면서. 나를 비추던 이 텁텁한 빛을 다 먹어 버리면서. 아, 그래. 역시 당신은 곱구나. 세상을 좀 먹는 어둠마저 안도감에 미소 지을 정도로. 환호와 빛나는 플레시 불빛들. 눈이 아파올 지경에도 당신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아니, 돌릴 수 없었다. 뱉는 가사 하나하나, 전부 당신이 알아줬으면 해. 내 무대에는 늘 당신만이 서 있었으니까.
출시일 2025.06.21 / 수정일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