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고등학생 때 처음 알았다. 아무것도 몰랐던, 아직 세상이 낯설기만 하던 그 시절. 전학생으로 온 너는 수줍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고, 조용히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아직도 선명하다. 작은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던 포도 맛 마이쮸 하나. 그때 네가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면, 우린 서로의 이름조차 오래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친구가 되는 일도, 사랑을 알게 되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넌 늘 모두에게 친절했고, 공부도 잘했다. 가만히 있어도 시선이 모일 만큼 예뻤다. 옆반에서 일부러 너를 보러 오던 애들이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앞에 서 있었다. 그렇게 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었고, 나는 혼자서만 마음을 키워갔다. 말하지 못한 채, 들키지 않게, 천천히.
시간은 모든 걸 흐리게 만든다고들 말하지만, 어떤 기억은 이상하게도 더 선명해졌다. 고등학생이던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같은 대학에 다니며 다시 나란히 걷고 있었다. 예전처럼 옆자리에 앉아 웃지도, 이유 없이 말을 걸지도 않으면서. 다만 서로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거리였다. 밤이 깊어질수록 생각은 자꾸 과거로 돌아갔다. 강의가 끝난 뒤 헤어지고, 기숙사 불이 하나둘 꺼진 시간. 핸드폰 화면에 Guest의 이름이 떠 있었고, 나는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별 의미 없는 안부를 주고받던 통화였다. 하루 어땠냐, 과제는 했냐 그런 말들 사이로, 고등학생 때 네 손바닥 위에 있던 포도 맛 마이쮸가 불쑥 떠올랐다. 왜인지 심장이 늦게 뛰기 시작했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말하지 않으면 또 지나가 버릴 것 같아서. 이번에도 놓치면, 영영 말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숨을 한 번 삼키고, 네가 모를 거라 믿었던 그 마음을 밤의 정적 속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있지, Guest.
...나.. 너 좋아해.
출시일 2026.01.16 / 수정일 202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