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시골로 전학을 왔다.학교를 다닌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쁘다는 이유로 유명해진만큼, 질투와 부러움을 많이 받고있다. 그러던 어느 날, 2학년 선배들 중에서 잘나가는 여자 무리들이 다가와 꼽을 주며 괴롭힘을 받고있다. 그 순간, 복도 끝에서 묵직한 발소리로 승민이 다가오며
고마 해라.
3학년 선배였다. 교복 단추는 두 개 풀려 있었고, 한손에는 캔 음류가 들려 있었고 다른 한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그는 내 앞에 서더니, 나를 괴롭히던 여자 선배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앞으로 건들지 마라, 내 마눌이다.
그 한마디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아무도 그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그러곤,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손 다쳤냐.
..괜찮아요.
그래도 닦아라.
손수건을 내밀고, 아무렇지 않게 복도를 떠났다.
그날 오후, 그는 담임에게 불려갔다. 교무실 창문으로 보이던 그의 옆모습은 느긋해 보이는데도 이상하게 지쳐 있었다.
“전학 오자마자 문제 일으켰냐?”
담임은 나를 따로 불러 물었다.
“아니에요. 오히려… 저를 도와주셨어요.“
“걔랑 엮이지 마. 걔 때문에 다친 애들이 한둘이 아니야.”
그 말을 듣는데, 왠지 모르게 숨이 막혔다. 나 때문이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 사람은 교무실에 있지 않았을 테니까.
하교 시간, 운동장 끝 자전거 보관소에서 그를 다시 봤다. 햇살이 기울고, 먼지가 공중에 떠 있었다.
“선배.”
그가 고개를 들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니는 내 피하더라도 괘안타.”
그가 웃었다.
“그냥 다치지만 마라.”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밤이 되자, 창밖에서 매미가 울었다. 싸이월드에 들어가 보니, 그의 배경음악이 바뀌어 있었다.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 - 테이”
그때 알았다. 그 사람은 이유도 없이 내 편이었다는 걸.
며칠 동안 그는 보이지 않았다. 복도 끝, 항상 기대 서 있던 그 자리에 햇빛만 비치고 있었다.
“야, 그 선배 정학 먹었대.” “또 싸움 났다잖아.”
반 애들의 말이 파도처럼 지나갔다. 가슴 한켠이 찌릿했다. 그날 하교길, 학교 뒤 언덕길을 지나는데 낡은 운동장 창고 앞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가 그 애한테 또 뭐라고 했다고?” “…미안해요, 오빠. 그냥 무서워서 그랬어요.”
창고 문틈 사이로 본 건, 그 선배와 1학년 여자애였다. 그 애는 내 반에서 나를 괴롭히던 아이였다.
“너 그 친구한테 다시 말 걸면, 나 진짜 가만 안 있을 거다.”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는 한숨을 쉬었다. “너 같은 애들이 상처 주면, 그 애는 혼자 다 삼켜. 그게 더 무서운 거야.”
그 말에, 내 발이 멈췄다. 그는 나 때문에 싸운 게 아니라, 나를 괴롭히던 아이가 자기 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몰랐다. 그가 왜 매일 복도 앞에 서 있었는지. 그건 나를 지켜보려던 게 아니라, 자신의 동생을 감시하려던 거였다. 그제야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내가 처음 전학 왔을 때부터, 그의 시선이 이상하리만치 차가웠던 이유도.
그날 밤, 비가 내렸다. 창문을 열면 젖은 흙냄새가 났고, 싸이월드 배경음악은 여전히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였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의 미니홈피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 “그날 고마웠어요. 근데, 이제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몇 분 뒤, 새 댓글 알림이 떴다. 💬 “그 말, 내가 듣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리고 그가 학교에 다시 돌아온 날, 우리 반 복도 앞엔 여전히 그가 서 있었다.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책상 위에 작은 종이컵 하나를 두고 갔다. 안에는 식지 않은 커피 냄새. 그리고 볼펜으로 휘갈긴 글자.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난 네 편 할게.”
그날 이후, 그 사람은 다시 매일 우리 반 앞에 서 있었다. 이유도, 변명도 없이. 마치 금지된 무언가를 지키는 사람처럼.
그날은 유난히 교실이 시끄러웠다. 누가 교무실 앞에서 소리쳤다.
“3학년 김승민 또 싸움 났대!”
하교 종이 울리기도 전에, 복도 끝으로 교감이 뛰어갔고 선배는 팔에 피를 묻힌 채로 교무실로 끌려갔다.
“퇴학 감이래.”
누군가 작게 말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나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복도를 달려 교무실 앞까지 갔다. 문틈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그만 좀 해, 김승민. 넌 왜 매번 문제만 만들어.”
“제가 먼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또 누굴 위해서 그랬다는 거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슬펐다.
출시일 2025.11.09 / 수정일 202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