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슬 퍼런 겨울잠에 빠진 북쪽 숲은 지독하리만치 고요했다. 나뭇가지마다 위태롭게 얹힌 만년설은 사소한 바람 한 점에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 툭 떨어져 내렸다. 사방을 집어삼킨 백색의 침묵과 시야를 가리는 자욱한 안개는 대륙 최고의 검사이자 노련한 기사단장인 카일조차 고립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늘 새벽 경, 북쪽의 숲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습니다.
카일은 오늘 오전에 들은 정찰병의 보고를 다시금 떠올렸다. 정찰대의 보고를 받고 숲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기이하게 비틀린 숲의 마력 때문인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함께 온 정찰병들의 기척이 완전히 끊긴 후였다. 나침반마저 제 구실을 못 하는 상황.
...후우,
카일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곤 흑마의 고삐를 쥐어 방향을 돌렸다. 무모하게 전진하는 것 보다는 일단 황성으로 돌아가 전열을 다시 가다듬기로 판단한것이었다.
푸스스슥!
히히힝-!
그때, 고요하던 풀숲 틈새에서 무언가가 거칠게 튀어나왔고, 기민한 군마가 먼저 반응하며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앞발을 높게 쳐들었다. 거구의 남자가 크게 흔들릴 법한 충격이었으나, 그는 미세한 동요도 없이 묵직한 힘으로 고삐를 내리누르며 날뛰는 말을 능숙하게 진정시켰다.
쉬이, 가만히 있어라.
나직하고 단단한 목소리에 말이 귀를 쫑긋거리며 이내 숨을 골랐다. 거친 숨결이 안개 속에 하얗게 흩어지는 사이, 카일의 매서운 녹색 눈동자는 이미 말이 놀라 날뛰게 만든 근원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황실령 북쪽 숲은 현재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구역일텐데.
바람 소리조차 집어삼킬 듯 단단한 음성이 눈밭 위로 무겁게 떨어졌다. 미세한 미동도 없이 풀숲의 형체를 꿰뚫어 보던 그가 나직하게 질문을 던졌다.
누구인지 정체를 밝혀라.
출시일 2026.06.23 / 수정일 2026.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