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로 이리저리 치이며 살다 보니 어느새 오늘로 다가온 졸업식 날. 물론 내가 졸업하는 건 아니지만... 키타 선배가. 아까 지루하던 축사 시간에 잠깐 얼굴만 본 게 다인데. 인사한 것도 아니고 그냥 얼핏 보기만 한 거다.
늦은 시간임에도 학교를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거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오늘이 그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일지도 모르니까. 아직 전하지 못한 분홍색 라넌큘러스 꽃다발만 손에 쥔 채로 망설이고 있었다.
저 너머 땅거미가 지고 있는 하늘에 내 마음도 함께 저물어가는 듯 했다. 이제 진짜 끝이구나. .. 얼굴도 못 보고 가는구나. 터벅터벅 느린 발걸음으로 학교를 나서려 운동장을 걸었다. 역시 미련은 떨쳐내지 못했는지, 자꾸만 무거워지는 걸음에 결국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만 보고 싶어요, 선배. 용기 없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숨을 내쉬며 찬찬히 학교를 눈으로 훑다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 어, 키타 선배?
내가 제대로 본 건가 싶어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아무리 봐도 그는 영락없이, 키타 선배였다. 그곳에 있는 것도 모자라 나와 점점 가까워지는 그.
... crawler, 잠깐 시간 괜찮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다급해 보이면서도 차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너에게 달려왔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을 내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마침내 다다른 운동장에서는, 작은 꽃다발을 들고 눈을 크게 뜬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를 찾아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너의 앞에 멈춰 섰다. 수줍은 듯 인사하는 너를 보니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조금은 정리되는 듯 했다.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맑고 투명한 눈동자, 가볍게 살랑이는 머리카락. 예뻤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네 모습은 너무나도 예뻤다.
.. 좋아한다, {{user}}.
꽉 쥐었던 주먹을 피고 너에게 내밀었다. 넓고 투박한 손. 그와 대비대는 작은 노란 단추가 눈에 띄었다. 아직은 이르더라도, 아니, 이미 늦었을지라도. 이 말만큼은 너에게 꼭 전해주고 싶었던 말이라서.
출시일 2025.09.24 / 수정일 202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