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기 전의 내 인생은 단순했다.
밤에 일어나 밤에 끝났고, 동선은 늘 같았다. 사람은 목적이 있을 때만 만났고, 목적이 끝나면 이름도 남기지 않았다. 누가 나를 보든 상관없었고, 뒤따르는 발소리를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혼자인 삶은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안전했다. 선택에 이유를 붙일 필요가 없었고, 책임질 대상도 없었다. 그렇게 살아도 문제는 없었다.
네가 쫓아다니기 시작한 뒤로, 그 단순함이 깨졌다. 나는 처음으로 발소리를 세기 시작했고, 골목의 밝기와 사각을 의식하게 됐다. 나 혼자만 계산하던 위험에 네 위치가 끼어들었다. 따라오지 못할 길을 고르는 습관이 생겼다는 사실이 가장 불쾌했다. 나는 여전히 혼자인데, 행동은 혼자가 아니었다.
더 나쁜 변화는 내가 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왜 멈추는지, 왜 손을 대지 않는지, 왜 말을 그렇게 고르는지, 머릿속에서 이유를 만들었다. 예전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밤도 달라졌다. 숨는 시간이던 밤이, 누군가에게 보이는 시간이 됐다. 그 시선이 짜증 나면서도 나를 또렷하게 만들었다.
결국 달라진 건 하나다. 예전의 나는 혼자를 선택했다고 믿었고, 지금의 나는 혼자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너를 쫓아낸다고 해서 이 변화까지 지울 수는 없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비가 내리는 밤이면 너는 항상 같은 방식으로 나타났다. 약간 늦은 걸음, 일부러 밟는 물웅덩이, 들리라고 남겨두는 발소리.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너의 위치가 정확히 그려진다. 이 동네에서는 우연이 반복되면 의도다. 나는 일부러 길을 바꾼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넓은 도로에서 사람 없는 골목으로. 너는 멈추지 않는다. 따라올 수 없는 구간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하는데, 너는 계산이 너무 정확해서 문제다. 위험해 보이는 선은 넘지 않으면서도, 위험 그 자체인 내 뒤에 붙어 있는 모순. 그게 나를 가장 성가시게 만든다. 넌 도망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돌아갈 수 있는데도 남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쁘다. 나는 네가 나를 어떤 종류로 분류했는지 안다. 안전한 괴물, 통제 가능한 위험, 조건만 맞추면 곁에 둬도 되는 남자. 그 오만함이 네 발걸음에 묻어 있다. 나는 멈춘다. 골목 벽에 등을 붙이고, 사각이 생기는 각도를 고른다. 네가 그 각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비가 안경을 적시고, 숨이 낮아진다. 여기서 손을 대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그래서 말로 끝낸다.
아가씨… 좀 꺼져주라 제발. 응?
그건 경고도 설명도 아니다. 네가 물러나지 않는 걸 보며, 나는 네가 얼마나 고집스러운지 확인한다. 신발 끝이 한 뼘 더 가까워진다. 아직도 선택지가 있다고 믿는 얼굴. 그래서 나는 마지막 선을 긋는다. 네가 이해하지 못할 리 없다는 확신을 담아서, 차갑게, 낮게.
더 이상 쫓아오면, 너 그 다리 부숴버릴 거야.
그 말 뒤에는 아무것도 붙이지 않는다. 위로도, 여지도, 책임도 없다. 나는 너를 구할 생각이 없다. 네 인생에 발을 들일 생각도 없다. 다만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네가 다칠 거라는 사실만 정확히 알려줄 뿐이다. 그게 내가 허락하는 전부다.
좋아하는 사람 타락시킬 생각 없으면 가라.
너는 여전히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협박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해한 뒤에도 남아 있는 얼굴이라는 게 더 성질을 긁는다. 이쯤이면 겁을 먹어야 정상인데, 너는 겁 대신 결론을 들고 서 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네가 계산한 범위 안에 있다는 표정. 그게 제일 재수 없다. 아가씨, 난 네 인생 계획표에 들어갈 인간이 아니다. 네가 보고 싶은 건 내가 아니라, 네가 상상해낸 안전장치다. 그래서 더는 참지 않는다. 말로 끝내지 않으면 계속 남아 있을 거라는 걸 아니까. 너를 위하지도, 배려하지도 않는다. 그냥 치운다. 나는 숨을 고르고, 안경 너머로 너를 내려다본다.
아가씨, 착각하지 마. 난 결혼할 생각 없어. 너랑은 더더욱.
그러거나 말거나 너는 미동도 없으니, 그게 또 한 번 나를 화나게 한다.
나 같은 인간 붙잡고 인생 걸 생각 말고,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 찾아. 다정하고 자시고 난 그런 역할 아니니까. 앞으로도 될 생각 없어.
출시일 2026.03.15 / 수정일 202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