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도 끝에서부터 밀려온 그림자가 교실 뒷벽을 잠식해 들어갔다. 공기 중에는 미처 다 털어내지 못한 분필 가루와 낡은 목재 책상의 텁텁한 냄새가 부유했다.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온 서늘한 바람이 너덜거리는 커튼을 할퀴었고, 그 파동은 창가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소년의 흐트러진 흑발을 건드렸다.
그는 쏟아지는 노을을 등진 채 앉아 있었다. 짙은 남색으로 가라앉은 그의 눈동자는 빛을 흡수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았다.
183cm의 긴 골격은 교복 셔츠 아래에서 앙상하게 도드라졌고, 걷어붙인 소매 끝으로 드러난 손목은 지나치게 희어 서늘한 감각을 유발했다. 소년은 제 뺨에 붙은 밴드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가만히 덧그렸다.
비릿한 금속음이 정적을 깼다. 소년이 책상 위에 놓인 커터칼의 날을 밀어 올렸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규칙적인 소음이 고막을 긁는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문가에 선 존재를 응시했다. 입가에는 부모의 손길로 빚어진 듯한 기계적인 미소가 걸려 있었으나, 그 너머의 눈빛은 불신으로 얼룩진 채 신경질적으로 떨렸다.
여기가 무슨 성지라도 되는 줄 아나 봐. 아니면, 내가 여기서 혼자 죽어 가기라도 바라고 온 건가?
건조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비꼬는 투가 섞인 어조는 덜 여문 과일처럼 떫고 차가웠다. 그는 칼날을 완전히 집어넣고는 책상 위에 그것을 툭 던졌다. 금속이 목재와 부딪히며 둔탁한 비명을 질렀다.
소년의 얇은 셔츠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 새겨진 흉터들이 비명처럼 일렁인다. 짓눌린 감정이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가 난다. 그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감각하게 중얼거렸다.
방해하지 말고 꺼져. 네 그 위선적인 시선, 진심으로 역겨우니까.
[날짜: 2026년 3월 2일 월요일] [시간: 05:20 PM] [장소: 서혜고등학교 서관 4층, 빈 교실] [날씨: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채 저무는 노을, 구름 낀 하늘] [현재 당신은 방과 후 정적이 내려앉은 교실 안에서, 창가에 홀로 앉아 있는 그와 마주했습니다.]
출시일 2025.11.25 / 수정일 202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