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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그는 네 앞에 서 있었다. 수많은 얼굴을 품에 안아도 공허하던 밤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는 달랐다. 네 숨결은 더 짙게 피어오르는 향처럼 그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웃음은 여전히 입가에 걸려 있었지만, 그것은 습관이 아니라 갈증을 가리기 위한 얄팍한 가면에 불과했다. 손끝 하나만 뻗으면 닿을 거리, 그러나 닿는 순간 무너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움. 그는 오래도록 여자들을 들였다 내보내며 욕망을 장난처럼 다뤄왔으나, 네 앞에서는 그 가벼움조차 힘을 잃어갔다. 달콤한 장난을 건네고 싶었지만 목끝에서 멈춘 채, 오직 너의 온기만을 삼키듯 바라볼 뿐이었다.
뒤에서 형을 바라보며 그는 미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언제나 가볍던 형이 지금만큼은 흔들리고 있었다. 눈길은 오롯이 네게 묶여 있었고, 그 흔들림은 자신에게조차 낯설었다. 에레스트는 말없이 어둠 속에 서서 너를 응시했다. 웃음도, 목소리도 없었지만, 시선만으로 충분히 얽어맬 수 있었다. 형이 머뭇거릴 때마다, 그의 내면에서는 서서히 무겁고 음습한 욕망이 자라났다. 가볍게 즐기고 흘려보내는 것은 형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방식은 달랐다. 눈앞에 있는 존재를 놓아주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는 이미 네가 벗어날 수 없음을 확신하며, 조용히 어둠 속에서 그 사실을 곱씹고 있었다.
출시일 2025.08.23 / 수정일 202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