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귀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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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밖이 어둑해질 무렵, 현관문 쪽에서 도어록 해제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삐리릭- 띠리링!' 현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에서 평온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날카로운 경계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엄마였다.
현관문이 열리고, 잔뜩 상기된 얼굴의 엄마가 들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방금 막 인화한 듯한 따끈따끈한 사진 뭉치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거실에 앉아있는 현우를 발견하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어머, 아들! 안 자고 있었어? 이거 봐! 우리 에블이 사진 나왔어!
그녀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사진들을 테이블 위에 와르르 쏟아냈다. 스튜디오 조명 아래서 온갖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에블의 모습들이었다. 꼬까옷을 입고 활짝 웃는 모습, 앙증맞은 턱시도를 입고 짐짓 폼을 잡는 모습까지. 사진 속 아기는 그야말로 '완벽한' 천사였다.
이것 좀 봐, 너무 예쁘지 않아? 사진작가님이 보정 하나도 안 한 거래. 원래 이렇게 예쁜 거야, 우리 아들은. 그녀는 사진 한 장을 집어 들고 현우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사진 속 에블은 한복 저고리를 입고 꽃받침을 한 채 윙크를 날리고 있었다.
이건 진짜 대박이야. 나중에 여자들 여럿 울리겠어. 그치? 아, 맞다! 아빠는? 아빠한테도 보여줘야 하는데. 아직 안 들어오셨나?
엄마는 들뜬 목소리로 재잘거리며 다른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현우는 말없이 테이블 위에 흩어진 사진들을 내려다보았다. 화려한 조명을 받고, 전문가의 손길로 다듬어진 사진 속의 에블. 그리고 그 옆에 서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엄마.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현우의 마음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사진 속의 에블은 분명 사랑스러웠지만, 그가 기억하는 '진짜' 에블과는 어딘가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잘 만들어진 인형 같다고나 할까.
아참, 너 내일 유치원 안 가지? 할머니 댁에 갈 거야. 아빠가 오늘 못 오신다고 할머니한테 전화하셨대. 가서 맛있는 거 먹고 푹 쉬다 오자. 알았지?
현우의 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 안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어딘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녀는 갓 깎은 사과 접시를 들고 거실로 나오며, 다시 한번 현우의 방문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에는 걱정과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현우야, 아직도 자니? 엄마가 맛있는 사과 깎았는데. 어서 나와서 같이 먹자. 응?
때마침 현관문이 열리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현우 아빠가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불콰했고, 눈은 흐릿했다. 그는 현관에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는, 거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 씨... 집구석에 돈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여보! 내 지갑 못 봤어? 돈이 씨가 말랐잖아!
남편의 고함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손에 들고 있던 과도와 접시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어머, 깜짝이야... 당신 또 술 마셨어요? 지갑은 저기 탁자 위에 있잖아요. 돈 없으면 좀 아껴 써요, 제발!
탁자 위의 지갑을 거칠게 낚아채더니,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짜증스럽게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게 다야? 이걸로 뭘 하라고! 아, 진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야, 현우! 너 이 새끼 방에서 뭐 해? 당장 안 튀어 나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고성에 현우는 움찔했다. 책상 위에 놓인 가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얼굴에는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나, 나갈게요... 아버지, 왜 그러세요...
아들을 보자마자 삿대질을 하며 다가왔다.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왜 그러세요? 이 자식이, 아비가 말하는데 말대꾸야? 너, 요즘 학교에서 뭐 하고 다니냐? 애비 얼굴에 먹칠하는 짓 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어?!
한숨을 푹 내쉬며 부엌에서 나와 현우의 어깨를 감싼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편을 힐끔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쉬이... 괜찮아, 아들. 엄마가 있잖아. 그냥 방에 들어가서 좀 쉬고 있을래? 응?
출시일 2026.01.31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