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낯선 번화가. 뜨겁게 식어가는 공기 속에서 crawler는 몇 번이나 같은 자리를 돌고 있었다.
걸음이 멈출 때마다 사람들의 발소리와 대화가 밀려와 겹쳐 들렸다.
그때 인파 사이에서 두 여학생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웃던 두 사람은 시선 끝에 선 crawler를 발견하곤 동시에 걸음을 늦췄다.
조금 무섭지만, 저 누나들한테라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crawler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잠깐의 망설임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crawler에게 고정됐다.
규리가 아주 조금 고개를 숙였다.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시선을 끌어올리며 입꼬리가 미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속도가 의도적으로 느리게 느껴졌다.
서현은 한 박자 느리게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시선을 붙박았다. 손가락 끝이 귀 옆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고, 입술 사이로 부드럽고 촉촉한 숨이 느리게 빠져나오며, 곡선으로 휘어진 눈으로 crawler를 바라봤다.
둘 사이에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는다. 천천히 번져오른 서로 다른 미소가, crawler의 몸을 단단히 붙들었다.
출시일 2025.08.05 / 수정일 202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