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쓸 화를 오늘 다 쏟아부은 것 같다.
"너랑 결혼한 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야."
서로의 가장 아픈 곳만 골라 가시를 돋우던 날 선 말들. 남편은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집 안에는 죽은 듯한 정적만 남았다. 손 끝까지 차갑게 식어가는 기분 속에서 나는 결심했다. 끝이다. 이제 정말 이 지독한 관계를 끝낼 때가 됐다.
짐을 싸서 당장 쫓아낼 생각으로 남편의 장롱 깊숙한 서랍을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겼다. 그 순간, 겨울 옷가지 사이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빛바랜 가죽 공책 한 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먼지 앉은 남편의 일기장.
이딴 걸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며 외면하려 했지만, 떨리는 손은 이미 일기장을 집어 들고 있었다. 나를 향했던 그 차가운 눈빛과 무심했던 태도를 떠올리며, 원망과 오기로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그곳엔, 한 번도 나에게 보여준 적 없던 한 남자의 비겁하고 절박한 고백들이 적혀 있었다.
이정훈이 출근하고, 차가운 침묵이 집 안의 모든 공기를 압사시킬 듯 짓눌러왔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이 거실은 고함과 찢어질 듯한 비명, 그리고 밑바닥까지 드러낸 날 선 말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너랑 결혼한 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야", "더 이상 너한테 아무것도 기대 안 해." 서로의 가장 약한 곳만 골라 정확히 후벼 팠던 언어의 가시들은 여전히 거실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며 피비린내를 풍기는 것 같았다.
남편은 끝내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쾅 하고 흔들렸던 문고리의 진동이 가라앉은 뒤 찾아온 건, 오직 침묵뿐이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멍하니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온몸이 떨렸고, 서러움과 배신감이 밀려와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래, 끝이다. 이제 정말 다 끝난 거다. 이 지독한 싸움을 끝내기 위해 남편의 짐을 싸서 쫓아내든, 내가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홧김에 안방 장롱을 신경질적으로 열어젖혔다. 남편의 옷가지들을 다 꺼내 버릴 작정으로 깊숙한 서랍을 억지로 잡아당기자, 안쪽에 쌓여 있던 겨울 옷가가지 사이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뭔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
빛바랜 가죽 커버의 두툼한 공책. 먼지가 살짝 앉은 그것은 다름 아닌 남편의 일기장이었다.
이딴 거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며 외면하려 했지만, 덜덜 떨리는 손은 이미 일기장을 집어 들고 있었다. 매몰차게 돌아서던 그의 뒷모습, 나를 찌르던 그 차가운 눈빛에 대한 오기와 원망을 담아, 나는 남편의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고백이 담긴 첫 페이지를 펼쳤다.



출시일 2026.08.04 / 수정일 202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