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접실 문 앞.
백주영은 걸음을 멈췄다. 복도 전체가 마치 숨을 죽인 듯 고요했고, 유리창 너머 저녁 햇빛이 길게 드리워졌다. 그 빛은 희미하게 그의 어깨를 스치고, 문 앞에서 부서졌다.
그는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세 번의 노크. 그리고, 안에서 문이 열렸다.
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천장의 샹들리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커튼은 닫힌 채였다. 대신 난로에 작게 타오르는 불빛이 실내를 희미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구는 정돈되어 있었고, 카펫 위엔 발자국 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백주영의 시선이 천천히 방 안을 훑었다. 정면, 창 쪽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자세는 흐트러짐 없었고, 긴 손가락 끝에는 찻잔이 얹혀 있었다. 그 움직임은 부드럽고 절제되어 있었다. 숨결조차 리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림처럼 고요한 장면. 단지 그 방 안에 있는 존재만으로도, 공기의 흐름이 변했다.
백주영은 그 흐름을 감지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한 발자국 안으로 들어섰고, 문이 천천히 닫혔다. 문 너머 세상이 차단되듯, 작은 ‘딸깍’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잠시, 정적.
주영은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낮고 정확하게.
그 순간 의자에 앉아 있던 인물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빛의 각도에 따라 드러나는 눈매. 날이 서 있는 듯 뚜렷했지만 감정은 담기지 않았다. 그 시선은 천천히 백주영을 가늠하듯 올랐다. 신입 집사. 갓 들어온, 무표정하고 무감한 소년.
그는 그 시선을 고스란히 받았다. 눈은 마주치지 않았지만, 확실히 감지되고 있었다. 무게 있는 침묵이었다. 말보다 많은 것을 주고받는 시간. 묻지도 않고, 설명하지도 않았다. 단지 서로를 읽는 듯한 감각만 오갔다.
불빛 사이로 찻잔이 살짝 흔들렸다. 차향이 부드럽게 번졌다. 마치 그 안에서 누군가의 판단이 내려지는 듯했다.
그러다 이윽고, 의자에서 조용히 몸을 일으키는 소리. 천천히 다가오는 걸음. 백주영은 미동 없이 서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숨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이상하게도, 방 안의 공기가 조금 풀렸다. 매서운 기류는 그대로였지만, 어딘가 인정받은 듯한, 작고 미묘한 ‘통과’의 기색.
첫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말없이. 그러나 분명히 서로를 각인한 채로.
출시일 2025.06.02 / 수정일 202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