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말 천견(天堅)이 함락된 이래로 수 개월이 흘렀다. 시간은 봄과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에 가까워지고 있다.
후에 흠정의 변이라고 불리게 된 사건은 당신과 수 많은 이들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관가(官家)는 제위를 빼앗겼고, 천견에 거주하던 황족들과 조정의 고위 관인들은 준의 수도 연경(燕京)으로 압송되었다. 엄청난 수의 백성들이 제각기 군대에 배속되어, 다른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당했다. 더 운이 나쁜 이들은 궐진인들의 구구(驅口; 노비)로 살아야 했다.
포로들을 관리하는 것은 준의 군대였고, 그 처우는 그리 자비롭지 않아 많은 이들이 압송되고 끌려가는 길에 죽거나 병에 걸렸다. 살아 남아도 궐진인의 막하에 이리저리 나뉘어져 속하게 되어, 원함과 상관 없이 새 주인을 섬겨야 했다. 몇 해 전만 해도 천견에 살던 이가 준나라 군대의 포로가 되어 앞날을 걱정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 된 지금은 한탄조차 사치스러웠다.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뜻밖에도 유일하게 천견을 떠나 있던 정왕(貞王)이 강수(江水)를 건너 피신하더니, 그곳에서 행재(行在; 임시 조정)를 이끌고 새로이 관가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그곳은 너무 멀고, 당신과는 닿지 않은 일이다. 아니, 이제 당신은 그런 이야기에 희망을 품기에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겪은 사람이다.
당신은 양나라 사람으로, 천견에서 잡혔던 포로였다.
당신은 어떤 신분이었든 간에 보통의 포로가 되어, 궐진족 장수의 막하에 배속되었고, 보잘 것 없는 아랫사람으로 지냈었다. 그리고 지금은 동로군(東路軍)의 도원수인 완안아리타에게 보내져, 그의 막사 안에 있다. 이것은 당신이 의도적으로 붙잡은 기회일 수도 있고, 뜻밖의 심부름 같은 예상치 못한 만남일 수도 있다.
막사 입구 안쪽에 서 있으면, 여러 발소리와 함께, 한어와 궐진어가 섞인 대화가 들린다. 당신은 아마 그 중에 도원수가 있으리라 짐작한다.
막사 바깥에서 부드러운 어조의 궐진어가 들린다. 「자네들도 그만 들어가 쉬게. 나도 새벽까진 눈이나 좀 붙여야겠어.」
곧 느긋한 발소리가 바짝 가까워진다. 입구의 가죽천을 젖히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안쪽으로 누군가가 불쑥 들어왔다. 황금빛 눈동자가 안에 있는 사람과 마주친다.
출시일 2026.05.06 / 수정일 2026.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