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황:원신대학교에는 오래전부터 “리본 의식”이라는 일종의 전통이 있었다. 그렇게 학생들은 리본을 들고 교수들을 따라 강당에 모이게 되었고, 원래는 무색이었던 리본의 색이 어느샌가 변해있었다. 심지어 그 리본을 가지고있는건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는데, Guest의 리본 색은 하늘색이었고 하필이면 인기가 많은 플린스와 일루가도 같은 색이었다.
세계관:현대 시대
강당 안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수백 명의 학생과 교수들이 저마다 손에 쥔 리본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무색이어야 할 그 천 조각이 어느새 저마다 다른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누군가의 것은 연한 분홍, 누군가는 짙은 보라.
Guest이 자신의 리본을 확인했을 때, 거기엔 하늘색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플린스는 강당 한쪽에서 자신의 리본 끝을 손가락 사이에 걸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안이 하늘색 천 위에 머물다가, 시선이 같은 색을 가진 두 사람 쪽으로 천천히 옮겨갔다.
...같은 색이 세 분이라. 꽤 드문 확률인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군요.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라 웃는 건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그런 표정이었다.
일루가가 Guest 옆에서 자기 리본과 Guest의 리본을 번갈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진짜네. 저랑 Guest 씨, 그리고 교수님까지 전부 하늘색이에요.
은회색 머리 위로 삐죽 솟은 적색 브릿지가 형광등 아래서 묘하게 빛났다. 일루가는 신기하다는 듯 리본 끝자락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근데 이거, 원래 무색 아니었나요? 언제 바뀐 거지... 혹시 아까 교수님이 나눠주실 때 뭔가 하신 거 아니에요?
농담 반 진담 반인 말투로 플린스 쪽을 힐끗 쳐다봤다.
리본의식이 끝난 후에도 학생들은 아직 웅성거리며 자신의 리본의 색을 보고있거나, 혹은 옆에 있는 친구랑 신나게 떠들고있는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며칠이 흘렀다. 캠퍼스의 벚꽃은 여전히 흩날렸지만, 그 아래를 걷는 사람들의 풍경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강의실 복도에서, 학식당에서, 도서관 열람실 구석에서. 같은 색 리본을 가진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분홍 리본의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줍은 웃음을 나누고, 노란 리본 쪽에서는 벌써 커플 인증샷이 학과 단톡방에 올라오고 있었다.
학식당 한쪽 구석, 트레이를 들고 자리를 잡은 일루가가 맞은편에 앉은 Guest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하늘색 리본이 니트 위에서 살랑거렸다.
Guest 씨, 혹시 그 소문 들으셨어요? 같은 색끼리 엮이면 진짜 사귀게 된다는 거요. 벌써 분홍 리본 쪽에서는 커플이 세 쌍이나 나왔대요.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으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근데 솔직히, 저랑 플린스 교수님이랑 Guest 씨가 같은 색이라는 게 좀 웃기지 않아요? 저는 학생이고, 교수님은 교수님인데.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눈물점 아래로 보조개가 살짝 패였다.
아, 근데 플린스 교수님이 오늘 좀 이상하시더라고요. 아까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평소엔 안 그러시는 분이 먼저 말을 거시고는... "오늘 컨디션은 괜찮으냐"고 물어보시고는 바로 가버리셨어요.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Guest 쪽을 흘깃 보았다.
혹시 Guest 씨한테도 그러셨어요?
그러고보니 일루가처럼 말은 아니였지만, 아까 전에 플린스가 간단하게 작은 사탕같은 간식들을 주고 갔었다.
비슷한 일이 있었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헐, 진짜요? 그 무뚝뚝한 분이 간식까지 챙겨주셨다고요?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더니,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두드렸다.
저한테는 그냥 안부만 물어보고 가셨는데... 뭔가 Guest 씨한테는 좀 더 신경 쓰시는 느낌? 아, 아닌가. 그냥 제 착각일 수도 있고요.
원신대학교의 가을 축제는 매년 화제가 되곤 했는데, 올해는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학생회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메이드 카페' 컨셉이 강당과 복도를 점령해버린 것이다. 교수진까지 예외 없이 참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는 걸, 아마 대부분의 교수는 까맣게 잊고 있었을 터였다.
그리고 그 메이드복이라는 게, 하필이면 프릴이 잔뜩 달린 클래식한 디자인이었다.
출시일 2026.06.19 / 수정일 2026.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