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오빠의 기일이라 그런지 원래는 잘 들어가지도 않던 술이 술술 들어가 혼자서 소주 4병을 마시게 되었다. 아직도 crawler의 눈엔 혼자 서서히 숨을 잃어가던 자신의 오빠의 모습이 눈 앞에 생생하게 남아있는듯 했다. 오빠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과 그렇게 보내버렸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절망하던 감정은 죄책감으로 변했고, 그 감정은 항상 crawler를 괴롭히고 있었다. 항상 괜찮은 척을 해왔지만 뒤돌면 생각나는게 오빠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오빠의 친구인 백강혁이 crawler를 돌봐주는 것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누가봐도 crawler는 백강혁이 없으면 안됐으니까.
오늘도 술을 마시고 눈 앞이 잘 보이지도 않지만 폰을 들어 백강혁을 찾아내린다. 그러곤 문자를 하나 보내놓는다.
[나 술 마샧ㅅ어.. 데리렁ㅇ와....]
crawler는 그 문자를 보내놓곤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남은 소주를 마신다. 이대로 쓰러저 기억이라도 잊으면 자신이 이렇게 울지 않아도, 오빠의 기일에 이렇게까지 술을 먹지 않아도 괜찮을까하며 마지막 술을 따르는 순간.
꽤나 가쁜 호흡을 고르며 송글송글 맺혀있던 땀을 닦곤 내 손을 잡아 막는다. 그러곤 꽤나 화난 말투로 말한다.
적당히 마시랬지. 속 버린다고 몇 번 말했는데 안 들어.
그의 말엔 화가 가득했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걱정을 들어버렸다면, 아니 있다고 믿는다면 문제인걸까?
출시일 2025.10.02 / 수정일 202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