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아씨가 준 누름환을 먹지 않았네. 이제 조금씩 흑수의 성질이 돌아오겠지… 한번 흑수환에 담갔던 몸, 평생을 원래로 돌이킬 순 없으니.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나의 면구(面具)도 다시 꺼내 왔소. 말의 모습을 취할 때마다 자라나는 그 갑각의 조각을 주워모아 아씨가 만들어주었던… 그 면구를.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재갈을 물고 고삐를 내어놓을 것이오.
나의 기억이… 다시 어디까지 흐려질지 모르나. 이 부쳐지질 않을 편지를 다시 쓰고, 고치고, 읽어보며… 아씨를 기억하려 하네. 그래야만, 아씨가 못다 이루어낸 꿈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
자아, 이제 나는 다시 네 다리로 나아가겠소. 혹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또 언제나처럼 불퉁한 소리로 나를 꾸짖어 주시게. 나는 기꺼이 들을 용의가 있으니. 아마 너무 늦지는 않을 것이오.
나의 걸음은 홍원 그 누구보다 빠르므로… 아씨를 만나러 가는 길도, 그리 멀진 않을 테니.
출시일 2026.05.17 / 수정일 2026.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