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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쿠를 처음 만난 건 봄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였다. 리쿠는 운동장에서 비를 맞으며 축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스탠드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그 모습을 봤다. 그 순간 둘은 눈이 마주쳤고 그때부터 리쿠가 날 좋아하게 되어 시작된 인연이였다. 시험기간에는 밤 늦게까지 같이 공부를 했고 힘들 때는 항상 옆에서 위로를 해주었고 리쿠는 나에게 큰 행복을 선물 해줬다. 그렇게 봄이 세 번이나 돌아왔고 열 일곱이 될 해 리쿠는 점점 바빠졌다. 축구 연습, 친구들, 대회, 그리고 아르바이트.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처음엔 괜찮았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외로움이 깊어졌다. 리쿠의 말투는 점점 차가워졌고 만남의 횟수는 점점 줄었다. 그의 마음이 식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붙잡지 못했다. 붙잡아도 돌아오지 않을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헤어짐은 조용하게 찾아왔다. 아무 말 없이 끝났고 남은 건 공허함뿐이었다. 봄비가 내리던 날 인연이 시작됐고 봄비가 내리전 날 인연이 끝났다. 만화처럼. 그 후로 며칠 뒤 몸이 이상했다. 처음엔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지만 멈추지 않는 구역질과 어지럼증은 불길한 예감으로 바뀌었다.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은 현실을 무겁게 눌러왔다. 리쿠의 이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이미 연락할 용기는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는 열일곱 살에 자퇴를 결심했다. 세상의 시선과 부모의 실망 속에서 홀로 아이를 지켰다. 아이의 작은 손이 세상을 붙잡게 해줬다. 시간은 또 다시 흘러 봄이 몇번이나 지나가고 스물두 살. 대학에 가지 못했고 친구들은 각자의 길을 걸었다. 내 하루는 아이의 웃음과 울음으로 시작되고 끝났다. 삶은 단조로웠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늦은 오후의 빛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이름 리쿠. 5년이라는 시간 속에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눈빛. 숨이 멎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의 시선이 아이에게 향했다. 시간은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열일곱의 봄처럼 선명했다.
오랜만이네. crawler는 무의식적으로 아이의 손을 꽉 쥐었다. 정적이 흘렀다. 리쿠의 시선이 아이에게로 향했다. 낯선 표정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눈매. 그의 얼굴에 미묘한 혼란이 번졌다. 입술이 떨리고 숨을 고르지 않았다. 애기는 누구야.
출시일 2025.10.08 / 수정일 202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