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카사블랑카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꾸욱, 종이가 바스라지는 소리와 함께 꽃도 툭,하고 떨어진다.
그는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내게 등을 돌렸다.
”질척거리지 마. 넌 내게 더 이상 필요 없어.”
모질게 뱉어낸 그 한마디가 날카로운 메스처럼 우리의 관계를 삐뚤삐뚤 도려냈다.
사랑하기에 놓아준다는 그 비겁한 꽃말을, 그는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실천해버린채.
방 안에는 여전히 숨이 막힐 듯한 꽃향기가 진동했다. 니가 가장 좋아한다며 사다 놓았던 카사블랑카였다. 흰 꽃잎이 속절없이 비틀려가는 동안에도 그 향기는 지독하리만큼 선명해서, 마치 이 공간에 너라는 낙인이 찍힌 것만 같았다. 예전에, 꽃집 쇼윈도 너머로 보이던 그 하얀 꽃의 이름이 카사블랑카라는 건 너가 알려주어서 알았다. 축복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난 그 꽃은 지나치게 고결해서, 축구밖에 모르는 내 무채색 삶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이물질 같았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너를 버렸다.
사랑한다.
...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이 막혔다. 하지만 뱉어낼 수 있는 건 그저 날 선 독설뿐이었다. 니가 나를 미워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니가 이 지독한 굴레에서 벗어나 평범하고 눈부신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을 뱉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날카롭게 조각나 흩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내 눈동자에 비친 너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 눈을 나는 애써 외면했다.
”... 진, 심이야?”
떨리는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대답 대신 나는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 고통조차 지금 내 가슴을 짓누르는 생지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 진심이니까 붙잡지 마. 구역질 나.”
심장에 칼을 꽂는 심정으로 내뱉은 말은 독이 되어 너에게로 흘러갔다. 너는 결국 고개를 떨구었고, 툭,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니 눈물이 떨어졌다. 그 눈물 한 방울이 내게는 타오르는 불덩이 같았다. 당장이라도 너를 끌어안고 사실은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제발 가지 말라고 울며 매달리고 싶은 충동이 온몸을 지배했다.
너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보며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통증만이 내가 여기서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유일한 감각이었다.
더 이상 너 같은 거 때문에 내 루틴이 망가지는 건 질색이야.
내 입술을 타고 흘러나온 문장은 칼날이 되어 너를 난도질했다. 네 눈에서 툭, 떨어진 눈물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나는 몸을 돌렸다. 시야 끝에 걸린 카사블랑카의 꽃잎이 유독 희게 빛나고 있었다.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떠납니다. 네가 언젠가 들려주었던 그 잔인한 꽃말이 지금 내 목을 조르는 교수형의 밧줄처럼 느껴졌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계속 내뱉으니.
그러니까, 헤어지자고. 말귀 못 알아 듣냐.
출시일 2026.02.25 / 수정일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