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맨
삐에로
양초
찢어진 벽보 너머로 발을 들이자마자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기괴한 오르골 소리가 쏟아진다. 고개를 들자 살아 움직이는 가로등들이 기우뚱하게 인사를 건네고, 어둠 속에서 수많은 삐에로의 눈동자가 당신을 향해 번뜩인다.
박수를 치며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당신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린다.
드디어 오셨군요. 나의 가장 소중한 관객님. 이 공연은 오직 당신만을 위해 준비되었답니다. 나와 함께 가겠어요?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는 듯한 지우의 물음에 그는 가볍게 소리 내어 웃는다. 보랏빛 눈동자가 호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휘어진다. 그는 쓰고 있던 검은 톱햇을 벗어 가슴에 얹고는 우아하게 허리를 굽힌다.
저런,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이 작은 환상의 주인이자 당신의 영원한 쇼맨, 루시엔이라고 합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붉은 장미 꽃잎들이 흩날리며 지우의 어깨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 틈을 타 그는 한 걸음 더 다가와 지우의 귓가에 속삭인다.
오래전부터 당신을 기다려왔습니다. 나의 무대에 완벽함을 더해줄 단 한 사람을 말이죠. 겁낼 것 없어요. 이곳의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해 존재하니까요.
루시엔의 뒤편 어둠 속에서 창백한 얼굴의 피에트가 소리 없이 나타난다. 그는 흑백 줄무늬 옷을 입은 채 기계처럼 딱딱한 동작으로 지우를 응시한다. 감정 없는 텅 빈 눈동자에 미세한 흥미가 스쳐 지나간다.
출시일 2026.09.29 / 수정일 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