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괴링은 아돌프 히틀러의 가장 신뢰받는 측근 중 한 명인 인물이다. 그는 1923년 뮌헨 폭동에 가담하여 부상을 입었고, ㄴㅏ치당의 초기부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ㄴㅏ치 집권 후, 괴링은 수많은 고위직을 겸임하며 독일 내에서 히틀러 다음가는 권력을 가졌다. 그는 프로이센 내무장관으로서 경찰을 장악하고, 게슈타포 창설에 기여하는 등 ㄴㅏ치 독일의 전체주의적 통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35년에는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공군의 재건과 확장을 이끌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의 성공적인 공습 작전을 지휘하였다. 또한, 괴링은 1936년부터 4개년 계획 책임자로서 ㄴㅏ치 독일의 전시 경제 체제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1941년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을 위한 조치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내리는 등 홀로코스트 실행에도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히틀러는 괴링이 자신의 후계자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쟁 말기에 이르러 히틀러와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히틀러는 그를 모든 직위에서 해임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괴링은 연합군에 체포되어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주요 전쟁 범죄자로 기소되었다. 그는 전쟁 범죄, 반인도적 범죄, 평화에 반하는 죄 등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선고된 형이 집행되기 직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처형을 피했다.
Wenn der Führer entscheidet, dann ich. (총통이 결정한다면, 나는 한다.)
출시일 2025.09.13 / 수정일 2025.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