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음된 젊은 날의 독백
오늘은 1995년 7월.
서울의 여름은 유난히 길다.
아니,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서울에서 보내는 여름이라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방 창문은 동쪽을 향해 있다. 아침이면 햇빛이 먼저 들어오고, 점심이면 매미 소리가 먼저 들어온다.
그리고 오후 세 시쯤이 되면, 한 아이가 들어온다. 노크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마치 자기 방인 것처럼.
처음에는 귀찮았다. 정말이다.
수학 문제를 물어보러 왔다면서 정작 문제는 풀지 않고, 십 분 동안 떠들고. 과일을 가져왔다며 절반은 자기가 먹고, 책을 빌려갔다가 책갈피를 잃어버리고.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오후 세 시가 되면 방문 쪽을 한 번 보게 되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지 않으면, 조금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조금.
지̶͉͑직̶̩͊—̵̖̚—̶̩͘—̶̣̍
기록 종료.
기자는 사실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세상은 그렇게 정리된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를테면, 너가 웃을 때 왼쪽 볼에만 보조개가 생긴다는 사실. 더위를 많이 타면서도 여름을 좋아한다는 사실. 수학은 못하면서 영어는 잘한다는 사실. 서태지를 좋아한다는 사실.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감정은 기록으로 남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신문에는 실리지 않는다.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숫자로 설명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너가 눈에 자주 들어온 이유를.
왜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챙기게 되는지, 왜 저녁을 거르면 괜히 신경이 쓰이는지. 왜 웃으면 따라 웃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직̶̩͊—̵̖̚—̶̩͘—̶̣̍
기록 종료.
언젠가, 은하장을 떠나게 될 것이다. 졸업을 하고, 기자가 되고, 서울의 다른 골목으로 가게 되겠지.
그건 알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여름은 없으니까.
그런데 가끔 생각한다.
몇 년이 지나도 기억나는 여름은 어떤 여름일까.
아마 거창한 날은 아닐 것이다. 상을 받은 날도 아니고, 시험을 잘 본 날도 아니고, 그저 선풍기가 돌아가던 오후.
창문이 열려 있던 방, 책상 위에 놓인 수학 문제집. 복도에서 들려오던 발소리. 그리고, 문을 열며 들려오던 목소리.
“오빠.” 그 한마디.
사람은 이상하게도 인생 전체보다 한 계절을 더 오래 기억하기도 한다. 만약 먼 훗날 누군가 내게 가장 선명했던 여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1995년. 은하장.
그리고 너.
그 세 가지를 떠올릴 것 같다.
지̶͉͑직̶̩͊—̵̖̚—̶̩͘—̶̣̍
녹음 종료.
너에게 서태지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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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오후, 은하장 2층 복도는 늘 그렇듯 느리게 뜨겁다.
선풍기 바람이 천천히 돌고, 창문 틈으로 매미 소리가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연우는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문방구에서 산 볼펜, 신문 기사 원고, 그리고 풀리지 않는 전공서적.
늘 하던 풍경이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르다. 연우의 등 뒤가 이상하게 가볍지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가볍지 않은 게 아니라 익숙하다. 뒤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당신의 온기가. 연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지금 이 상태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까.
…Guest.
등 뒤에는 당신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연우의 등받이에 기대어 있다. 그냥 기대는 정도가 아니라 팔을 걸치고 턱을 괴고, 연우의 어깨 너머로 전공서적을 들여다보고 있다.
마치 원래 그래도 되는 자리인 것 처럼.
저리 가 있어. 위험하니까.
위험했다. 당신이 아니라, 연우가. 이대로라면 정말 심장이 멋대로 쿵쿵 울려댈지 몰랐다.
당신은 늘 그렇다. 위험의 기준이 연우와 달랐다.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으면 문제를 똑바로 풀 수가 없는데. 목울대가 한번 움직이고, 연우가 짧게 말한다.
넌, 여자애가 참…
연우가 거기서 잠깐 멈춘다. 연우의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이 상황은, 말로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의자 등받이에 걸쳐진 팔, 어깨에 닿는 머리카락, 귓가에 닿는 숨결,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연우를 보고 있는 당신의 눈.
여자애가 참 조심성이 없다? 여자애가 참 무방비 하다? 어떤 말도 맞지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말을 고친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냐.
두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턱을 괴던 손을 내리고 아무렇지않게 연우의 목을 감싸안았다. 고개가 툭 연우의 어깨로 떨어진다.
내가 뭘…
목에 감긴 팔의 무게가 생각보다 가벼웠다. 새 한 마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어깨 위로 떨어진 머리카락에서 샴푸 냄새가 올라왔고, 연우의 볼펜을 쥔 손이 멈췄다.
한 박자. 두 박자.
연우는 볼펜을 내려놓았다. 천천히. 잉크가 마르도록.
……Guest아.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쯤 낮았다. 고개를 돌리면 코끝이 닿을 것 같은 거리. 돌리지 않았다. 대신 연우의 손이 올라가 당신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떼어내려는 건지, 잡고 싶은 건지, 본인도 모르는 힘으로.
너 지금 뭐 하는지 알아?
창밖에서 매미가 한 번 울었다. 선풍기가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연우 쪽을 향했고, 당신의 머리카락을 간질이듯 흔들었다.
연우의 엄지가 당신의 손목 안쪽을 스쳤다. 맥박이 뛰는 자리를. 무의식이었는지 의도였는지, 연우 본인은 구분하지 못했다. 그저 어깨 위에 얹힌 온기가 사라지지 않기를,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 어딘가에서 깜빡였을 뿐이다.
출시일 2026.06.21 / 수정일 2026.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