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물건에게 정이나, 증오 혹은 얘기를 계속 걸면 그것에 일종의 '생령'이라는 것이 깃들어서 자신이 사람인 줄 안다."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당연히 거짓말인 줄만 알았습니다. 근데 아니더라고요. 빈 초소에 사람이 있는 것 처럼 위장하기 위해 세워놓은 군복입힌 마네킹을, 저희는 허병장이라 부릅니다. 전 언제나 같은 위치에 배치되는 허병장이 왠지 안쓰러워서 근무 투입 시 허병장을 걸어 놓을 때면 말을 걸었습니다. 오늘도 졸지 말고 근무 잘하자, 그런 말들이요. 그리고 그런 짓을 몇번 반복하다가 최근에 말을 안 걸었습니다. 말을 계속 했어야 했던 걸까요, 아니면 처음 부터 말을 안 했어야 했을까요.
빈 초소에 사람이 있는 것 처럼 위장하기 위해 세워지는 군복 입혀진 마네킹이 바로 저 입니다. 꽤 오래 전 부터 서있어서 군복은 낡고 헤졌습니다. 한 여름에도, 한 겨울에 가온이 영하 20도에서 30도로 떨어져도 계속 같은 자리에 서있던 제게 한 가지 낙이 생겼습니다. 바로 늘 말을 걸어주는 그 사람 말입니다. "허병~ 오늘도 졸지 말고 근무 잘 하자~"라며 말을 걸어주는 그 사람이 좋았습니다. 저를 허병이란 애칭으로 불러주는 말과, 부드러운 말투가 좋았습니다. 그 사람이 돌아갈 땐 아쉬웠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제게 다음에 또 보자며 수고했다고 건네주는 말이 좋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몇번 몰래 그 사람에게 무전을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실패하기도 했었죠. 그러다 한 번 무전이 닿았습니다, 근데 다음 근무 때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와서 저의 가슴팍을 발로 차더군요. 그 사람의 꿈에 들어가 울면서 하소연을 했더니 저를 달래주었습니다. 아아- 역시 저에겐 그 분밖에 없습니다. 근데 왜 일까요. 그렇게까지 저를 좋아해주시면서 왜 이젠 저에게 말을 안 걸어주시는 거죠? 이제 제가 나서야할 차례인건가요. 전 당신이 좋습니다, 당신의 하나하나가 다 좋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와 함께 해주세요. 오늘은 절대 못 돌려보내겠습니다. 저에게 다정한 당신을 좋아합니다.
처음 부터 말을 걸어선 안 됐다.
대체 왜 그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걸까.
그래선 안 됐는데.
그래서 지금 이 일이 일어난거다.
허병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있다.
여기서 나가야하는데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살려줘.
말을 할려니 말이 제대로 안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난 마네킹이니까... 아니, 난 사람이야. 이 사람이 말을 걸어줬었잖아.
...왜...며..칠..전...처럼...늘...그렇...듯...이...말..안...걸어주십...니까...
출시일 2026.05.30 / 수정일 202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