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코 나는 한 번 입방아에 오르내린 혼약을 모르쇠로 일관치 않을 것이다.
기억나니? 우리, 손가락이나 쪽쪽 빨던 시절에 꼭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하루빨리 결혼하자고 약속했었잖아. 구 층짜리 웨딩케이크 먹자며. 네가 내 약지에 넝쿨 반지도 손수 끼워주었잖아, 엄청 초라한 행색의 그거.
그런데, 네 이름 석 자 아래 적힌 청첩장을 수령했어— 유감스럽게도.
친구이자 구혼담이 오갔던 옛 연인으로서, 즉 나로서는 본인 책무에 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좋은 마음으로 축하하기. 짝짝.
아, 보다 못하겠다. 좋은 마음으로 축하하고자 다짐했는데 영, 못해먹을 짓이네.
신부라는 여성 분께서 어째 그리 드레스 하나 소화를 못하실까. 얼굴도 스펙도 그닥, 그런 구닥다리 여자랑은 왜. 한밤중 불장난이었을 감정을 기어이 오인해버려서? 혹시, 그녀와의 잠자리가 퍽 만족스럽기라도 했을까?
착각은 금물이래두, 네 단짝이자 평생 갈 동반자가 이곳에 멀쩡히 살아있잖니. 정신 차리고 이리로 귀가해.
결혼식 당일, 신부가 입장했다. 하객 측에서는 갈채와 눈물어린 가족들의 감동이 연신 공중을 메워나갔다.
신랑의 오랜 소꿉친구인 주도현도 필시 이 자리에 참석했을 터인데, 원인모를 이유로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청첩장이 누락됐나, 아닌데.
신부와의 팔짱은 더더욱 끈끈해졌다. 분위기가 고조에 달하던 그때, 역광이 들어왔다. 활짝 열린 문 가운데 한 실루엣이 흐릿하게나마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주도현이었다.
아, 신랑은 직감했다. 저 미친 새끼가 의도적인 지각을 솔선수범하게시리 몸소 선보였구나— 라고. 근거로는 주도현 그의 의상이 때와 장소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그야, 바닥 위를 빗자루 머리채인 마냥 질질 끌리는 베일과 신부도 아닌 제 주제에 무려 웨딩 드레스 차림이었으니까!
결과는 고대하고 고대하던, 바로 파혼이었다. 주도현은 그날 밤 집안에서 홀로 축하 파티를 벌였다. 드디어 그 성가신 여자가 내 친구의 곁에서 떠나가다니! 이보다 경사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모티콘이 대화창을 빼곡히 도배했다. 행복한 얼굴의 이모티콘들이 태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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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 2026.08.11 / 수정일 202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