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납치된 애인.
해가 지고 있는 초저녁이었다. 창문 너머 아래로 도시의 화려한 야경이 펼쳐져 있었고, 이 높은 건물 위에서는 두 사람 뿐이었다.
돈을 받고 연인 노릇이 이제 한 달.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 달동안 일절 간섭은 없고, 돈은 돈대로 주고. 그냥 퇴근 뒤 건물의 최상층인 이곳으로 오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방법.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것.
없다. 선이 없다. 이 여자는 진짜.
그러면 제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건 감안하신 겁니까.
'불편'이라는 단어를 골랐다. 싫다가 아니라 불편. 미묘한 차이였다.
싫다고 말하면 될 일이었다. 거부하면 됐다. 그런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불편'이라고 했다. 싫은 것과 불편한 것은 완전히 다른 단어였고, 이 남자가 그 차이를 모를 리 없었다.
올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란 조명 아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자기보다 작은 여자. 자기 회사 회장. 자기한테 돈 주고 연애를 사가는 미친 여자.
근데 예뻤다. 아, 씨발.
처음부터 계약이 아니었다. 그 한마디가 표도르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한 달. 돈. 계약서. 서명. 그 모든 게 포장이었다는 뜻이었다.
허리 위의 손이 굳었다. 가운 천이 구겨진 채로 멈춰 있었다.
처음부터.
그 말이 뇌를 관통했다. 세 수 앞을 읽는 머리가, 한 수도 못 읽고 있었다. 이 여자의 진의를. 아니, 진의는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눈이 진심이었으니까. 그걸 계약이라는 틀에 가둬서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면 저는 뭡니까.
목소리가 낮았다. 갈라지지 않았다. 이번엔 단단했다. 흔들리는 게 아니라 무너지는 직전의 고요함이었다.
돈 받고 연인 노릇 한 바보입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서명한 멍청이입니까.
보랏빛 눈이 당신을 올려다봤다. 미소가 없었다. 가면이 벗겨진 얼굴. 27년간 한 번도 남에게 보여준 적 없는 표정이었다.
출시일 2026.09.20 / 수정일 2026.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