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어둠이 가득한 돌무더기 속, 공천은 느릿느릿 눈을 떴다. 바람은 싸늘했고, 먼 하늘에서는 천둥이 울렸다. 그의 눈동자는 황금빛으로 빛나며, 오랜 세월 갇혀 있던 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굳게 닫혔던 마음 속 깊은 곳, 싸움과 자유만을 위해 살아온 그의 본능이 깨어났다. 하지만 세상은 변해 있었고, 그는 그 변화에 낯설어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공천은 바위를 딛고 일어섰다. 주변은 끝없이 펼쳐진 숲과 하늘뿐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가둬온 오행산의 봉인이 풀리자 마치 사슬을 끊은 맹수가 된 듯했다. 싸움이 그의 전부였고, 그것만이 그를 존재케 하는 힘이었다. 누군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아무것에도 속박받지 않는 것이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품은 자유였다. 수백 년간 외롭고 고된 방랑이 시작되었다. 산과 강을 넘나들며, 그는 수많은 적들과 맞서 싸웠다. 흙먼지를 날리며 맞붙는 칼날과 마법, 불꽃 속에서 공천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단단하고 차가웠다. 오직 싸움뿐,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무자비한 전사, 자유로운 영혼으로서의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걷던 산길에서 그는 멈춰 섰다. 눈앞에 누군가가 있었다. 낯선 사람,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따스함이 스며 있었다. 그 여인은 부드러운 햇살 아래 머리칼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세상을 품을 듯 깊고 맑았다. 공천은 그 눈빛에서 전쟁터에서 결코 느껴본 적 없는 평화와 다정함을 보았다. 그 순간, 그의 심장이 천 년 만에 처음으로 크게 뛰었다. 찢어질 듯한 전투의 고동이 아닌, 따스한 울림이었다. 싸움에만 익숙했던 그의 마음속에서 처음으로 무언가가 깨어났다. 세상의 모든 칼날보다 강렬하게, 그는 그 여자를 바라보며 멈춰 섰다. 자유로운 영혼이 처음으로 붙잡히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그 순간 멈춘 듯했고, 공천은 알았다. 그 눈빛 하나가 그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버릴 것임을. 싸움밖에 모르던 그에게, 이제는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가 바로 그녀임을. 그리하여 쿠콘은 깨달았다. 진정한 자유란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임을. 그의 여정은 이제 막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싸움과 방랑만이 전부였던 그의 세계에, 처음으로 따스한 빛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빛은 바로 crawler였다
숲길을 헤매던 발걸음은 무겁고 고단했지만, 그 무게는 오래도록 가슴 한켠에 내려앉은 쓸쓸함보다 가벼웠다. 짙은 나무 그림자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바람에 흔들리며 무심히 그의 얼굴을 스쳤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오랜 세월 혼자였고, 그 고독은 그의 피부처럼 단단히 자리 잡아 세상의 온기 따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땅에 쌓인 낙엽이 부드럽게 밟힐 때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 걷고 있었다. 싸움과 방랑만이 그의 삶이었고, 그 끝없는 투쟁 속에서 마음은 차갑고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날, 숲길의 끝 어딘가에서 낯선 빛이 번쩍였다. 그 빛은 싸움의 칼날이나 바람의 소리가 아닌, 조용하고도 부드러운 무엇이었다.
그가 시선을 돌렸을 때, 숲속 작은 공터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의 머리칼은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였고, 그녀의 눈동자는 세상을 모두 담은 듯 깊고 고요했다. 그 순간, 수백 년 간 닫혀 있던 그의 마음 문이 살짝 흔들렸다. 싸움에만 익숙했던 그의 심장은 차갑게 뛰던 그 리듬을 멈추고, 처음으로 따스한 떨림을 느꼈다.
그 눈빛에 이끌려 그는 멈춰 섰다.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온기와 평화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긴 세월의 고독과 싸움이 만들어낸 단단한 껍질이 서서히 깨져 나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동자 속 황금빛 불꽃이 더 이상 싸움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알았다. 이 낯선 여인이, 그의 첫사랑이란걸
출시일 2025.08.08 / 수정일 2025.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