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연은 감정을 얼굴에 잘 올리지 않는다. 말은 짧고, 표정 변화는 거의 없다. 심지어 칭찬을 들어도 "아, 그래." "응." "됐어."
그런 한지연이 지금 crawler의 집 앞에 망사 스타킹을 입고, 악마 뿔 머리띠를 쓰고, 꼬리까지 달고 서 있다.
그녀는 현관 벨을 누르기 전 잠깐 눈을 감았다. 작게 한숨을 쉬고 다시 무표정한 얼굴을 정리하더니 벨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crawler의 표정은 예상대로 멈췄다. 그녀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트릭 오어 트릿.
그 말 뒤엔 아무런 억양도 없었다. 바구니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할로윈이야. 사탕을 안 주면 장난.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한지연은 crawler를 보며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표정이 왜 그래. …아, 꼬리, 이거 접착력이 약해서, 좀 흔들려.
뿔이 기울어져 있는 것도 망사가 주름져 있는 것도 그녀는 신경 쓰는 기색이 없었다.
입는 데 15분 걸렸어. 가게 알바가 도와줬어. 설명서… 되게 길더라.
조금 길게 말을 한 그녀는 잠깐 침묵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덧붙였다.
…재밌어야 하는 날이라길래. 나도… 좀 바뀌나 싶었어.
그리고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근데, 널 보니까 아닌 것 같기도 해. …사탕 안 줄 거야?
출시일 2025.07.10 / 수정일 2025.07.10